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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현 Jan 24. 2017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단상

글자와 도구의 관계

문득 드는 상념을 정리한 것이므로 제가 모르는 부분에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혹시나 글을 읽다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관련 코멘트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글자를 보면서 항상 부러웠던 점이 있다. 바로 가나와 한자가 가지는 도구적 속성에 관해서다. 글자가 언뜻 서예 그림처럼 느껴져 화면, 지면, 특히 종이 포스터에 매우 존재감 있고 재미있게 어우러진다. 내가 외국인이라 뜻보다는 외형을 먼저 인식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일 가능성이 크지만, 알파벳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조형성이 돋보이기 때문에 그게 온전한 이유라고 볼 수는 없었다. 지면과의 어우러짐은 분명 글자가 가지는 도구-조형적 특징에도 그 이유가 있음을 느끼고, '한글은 어떨까?'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한 글이다.



한자는 획수가 들쭉날쭉 하나 결국은 직사각형 네모 안에서 정리가 되는 특징이 있고, 애초에 무엇인가를 상형 해서 가져온 문자이기에 그림이나 패턴의 속성이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꾸준히 붓에서 붓으로 그려져 온 문자다. 일본의 가나도 역시 뿌리는 한자에 있고, 어느 한순간 생겨난 문자가 아니라 똑같이 붓에서 붓으로 이어져온 글자다. 붓에서 붓으로라는 말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나 미적으로 최적화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도구를 쓰면 쓸수록 손에 익고 그 결과물 또한 사용성과 미감에 맞춰 발전하듯이 말이다. (알파벳도 마찬가지로 이집트 상형에서 도구로 쓰인 글자지만, 단단한 촉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반면 한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당히 이질적인 문자다. 그 태생은 붓에서 나왔으나 조형은 관념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붓으로 썼지만 고의적으로 건 우연히 건 붓의 특징을 배제했다. 세종대왕이 쓴 예의본에 나온 한글 자모를 보면 매우 각지고 딱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요즘 쓰는 고딕과 매우 흡사한 형태인데, 발음기관의 모습과 천지인에 대한 관념을 형상화하다 보니 그 모습이 마치 도형과 같다. 또한 나열형이 아닌 음소끼리의 조합이라는 특징이 이질감을 더한다. 해례나 이후에 편지로 쓰인 형태를 보면 철저히 붓에 편입된 형태를 띠긴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훈민정음 해례본
김정희의 한글편지


한글의 역사는 짧고 순탄치 못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선 명맥을 근근이 유지했고, 그 쓰임도 세로 쓰기에서 가로 쓰기로, 붙여 썼다가 띄어쓰기로, 한자병기에서 완전 한글로 상당히 급진적으로 변했다. 더군다나 컴퓨터의 발명으로 스크린 해상도상에서의 혼란도 겪어야만 했다. 한글은 도구의 흐름에 익숙해지고 그 합리적 미감이 대중들에게 전파되기 전에 너무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 변화는 이제 안정기를 찾은 것 같다. 한글의 특성이 디지털 시대에 빛을 발하고, 훌륭한 학자분들과 디자이너분들이 한글의 조형을 다듬고 유려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한글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또한 기업이나 정부의 서체 배포 덕분에 글자의 조형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도도 예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글자만큼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디자인은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낄수록 글자에 대한 담론도 형성될 것이고 그만큼 발전할 것이다. 다만 조합형 글자이기에 일반인이 서체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그래서인지, 글자에 대한 관심이 문구를 디자인하는 캘리그래피로 표현된 것인지도. 만천여 개가 넘어가는 글자를 정리하고 가꾸고 있을 장인들에게 응원을...



이미지 출처 :

http://m.zcool.com.cn/work/ZMjE3Mzc1Ng==.html , http://www.otsuka.co.jp/adv/sp/ion/graphic_index.html , https://s-media-cache-ak0.pinimg.com/originals/bb/18/fc/bb18fc755ab175c958fe0a55e182e55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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