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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May 20. 2019

여자들이 사라졌다

<을들의 당나귀 귀>: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를 읽다

여자들이 사라졌다. 한때 TV에서 풋풋한 청춘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엄청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 짝짓기 프로그램이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그와 함께 TV 예능에서 여자 연예인들도 서서히 사라졌다. 단지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주도적인 여성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들이 등장한다 해도 주인공 남성의 연애 상대이거나 육아와 가사의 전담자이거나 직장 내 갈등 요소로 그려진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제대로 일하는 여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대중매체 혹은 대중문화에서 여성의 소멸 혹은 왜곡된 여성상의 재현은 도대체 왜,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여자들이 사라졌다


한편, 요즘 육아하는 아빠의 모습을 담거나 딸바보 콘셉트로 다정다감한 아빠의 모습을 부각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생각하던 시대에서 남자도 육아에 참여하고, 권위적이고 불통의 이미지였던 아버지의 존재를 친근한 아빠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엄마인 여성들이 늘 해오던 육아나 가사가 아빠인 남자가 할 때는 이렇게 특별한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성인이 다 된 딸의 데이트 모습을 아빠가 지켜보거나, 아내와 함께 연애하던 장소에 딸을 데리고 가서 아내와의 데이트를 재현해보는 심리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슈퍼맨 아빠'나 '딸바보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재밌기보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딸바보 컨셉트의 유행을 가져 온 아빠 육아 프로그램들

이 불편함은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결혼 안 한 장성한 철부지(?) 아들들을 엄마들이 지켜보며 "저것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철이 안 들었어."라고 한탄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결혼을 해야 철이 들고, 결혼을 해서 가족을 이뤄야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처럼 여기는 정상 가족의 신화가 불편하다. 결국, TV 속에서는 그렇게 딸을 사랑하고 아끼는 딸바보 아빠로 나왔던 두 명의 출연자가 함께 일하는 동료의 성폭력 혐의자로 추락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충격보다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만이 아들을 구원하리라 믿는 우리 어머님들 

버라이어티 예능에 여자 연예인이 민낯으로 나오면 충격적이고 추하다고 욕하고, 화장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면 뭘 그렇게 외모에만 신경 쓰냐고 비난하는 이중성. 수년 동안 웃기지 못하는 남자 개그맨에게는 수년간 웃길 수 있는 시간을 참고 기다려주는 관대한 시청자들이 여성 개그맨이 단 몇 차례 출연해서 웃기지 못한다고 욕을 퍼붓는 이중성. 이 여성 연예인들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와 차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런 이중잣대 근저에 자리 잡은 여성 혐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딸바보 시대의 여성 혐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을들의 당나귀 귀>는 이런 의문들에 날카롭고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이 책은 <한국 여성노동자회>와 일군의 여성문화 연구자들이 2016년부터 함께 진행한 팟캐스트 내용 중 TV와 영화 등 대중문화에 관한 내용을 골라 펴낸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여성의 존재를 어떻게 배제해 왔으며, 여성성을 어떻게 왜곡시켜왔는지 잘 보여준다. 나처럼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이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를 이해하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도 좋기에 '페미니스트를 위한'이란 단서를 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성들은 철저히 배제된 대한민국 대표예능 무한도전과 1박 2일

총 3부로 구성된 책의 첫 번째 부분에서 저자들은 소위 '한남 엔터테인먼트'와 '아재 엔터테인먼트'로 요약되는 TV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여성 연예인들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 출연 기회와 평가면에서 대중들은 남성 연예인들과 달리 여성 연예인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배제와 차별 뒤에 자리 잡은 유력 중년 연예인 네트워크가 어떻게 기능하는 지를 분석한다. 우리나라 TV 예능을 대표하는 <무한도전>과 <1박 2일>에는 단 한 명의 여성 연예인도 고정 출연하지 않았다.  여성이 출연하는 경우에도 일시적이거나 다른 남성 출연자와의 러브라인을 강조하기 위해서만 등장한다. 


이런 TV 예능에서 여성 출연자가 사라지는 데에는 이른바 유라인, 규라인, 호라인 등 유재석, 이경규, 강호 등 등 유력 연예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성 연예인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끈끈한 남성연대가 남성 멤버들에게 더 많은 출연 기회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에서 정착할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고, 자신들의 취약점을 보호하면서 부정적 평가를 차단하는 보호막을 제공한다. 이런 남성 연예인 네트워크(라인)는  음주운전, 도박 등 물의를 일으킨 남성 연예인이 일정 기간 동안 자숙(?)을 거치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상민, 탁재훈, 신정환, 김용만 등등 그 예가 끝이 없다. JTBC의 대표 예능 <아는 형님>이 이런 물의 경력 남성 예능인의 전형적인 복귀 통로이다.  물의를 일으킨 여성 연예인들에게 대중들은 얼마나 가혹하던가.

물의 사례 남성 연예인의 대표 복귀 통로 <아는 형님>



'한남 엔터테인먼트'와 '아재 엔터테인먼트'는 지속된다


남성 연예인의 물의 사례는 오히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미담이 된다. 남성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도 다른 멤버들이 우애와 호의로 이를 커버해준다. 수년간 혼자서는 웃기지 못하는 캐릭터였던 정형돈이 마침내 혼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도전>의 멤버와 제작진은 꿋꿋하게 지켜봐 주었다. 반면에 <언니들의 슬램덩크> 같은 여성 연예인 중심의 예능은 어떤가? 단 몇 회만 방송되었을 뿐인데도 일부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오면 역시 여성 출연자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절하와 함께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고 출연진들이 자신의 콘셉트를 설정할 시간과 기회도 없이 종영되고 만다. 유력 남성 연예인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배제된 여성 연예인들은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함께  육아와 가사, 시월드와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토크 예능으로 밀려난다. 그리하여 남편도 없고 시부모도 없는 송은이, 김숙 비혼 여성 연예인은 출연할 데가 없다. 그렇게 TV 예능에서 밀려난 그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부활하고, 제작자로 변모하여 <김생민의 영수증>처럼 다시 지상파로 진입하는 특이한 현상도 일어난다. 



이 책은 또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등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인기가 식어갈 무렵 등장한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아빠 육아 예능'의 의의를 무시하지 않지만 그 한계 또한 예리하게 지적한다. 이런 '아빠 육아 예능'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가사노동과 육아에 참여하는 남성의 모습을 부각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이 많은 시간 능숙하게 해온 육아와 가사를 단 몇 시간의 촬영을 위해 분담한 아빠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서사를 통해 가사와 육아를 결국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로 고착화시키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엄마가 부재한 2~3일 만에 집안꼴은 말이 아니게 되고 이토록 어려운 육아를 담당할 적임자인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아빠. 엉망이 된 집안꼴에서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자각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엄마.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위해서는 육아와 가사는 역시 엄마가 담당해야 한다는 성역할의 고정화. 

결국 '문제적 아빠'로 드러난 딸바보 아빠들의 딸 관찰 프로그램들'

아빠 예능이 문제점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프로그램이 <아빠를 부탁해>나 <내 딸의 남자들> 등 딸바보 콘셉트를 확장한 아빠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 역시 많은 장점과 의의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딸을 온전한 인격체인 여성으로서가 아닌 아버지의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적이다. 딸바보 콘셉트의 아빠는 자신의 딸이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불안하다. 성인이 된 딸의 이성교제를 감시하고, 성인이 된 딸과의 데이트를 즐기고, 그 딸을 통해 아내와의 사랑을 재현하고 싶어하고, 성인인 딸의 데이트를 훔쳐보던 아빠들 중 일부가 결국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을 보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성폭력 가해자들의 그 흔한 변명, "딸 같아서 그랬다"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업여성'은 있어도 직장 여성은 없다.

이 책의 1부가 대중매체 속 여성의 부재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2부에서는 대중문화를 통해 재현되는 여성성의 왜곡을 집중 조명한다.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드물게 등장하는 여성들조차 자신들이 성취한 직업과 노동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불편한 존재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 객체화된다. '직업여성'이란 말이 보통의 직업을 가진 여성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나 이른바 '유흥업'에 종사하는 특정 여성들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는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TV나 드라마에서 일하는 여성은 온전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재현되지 않는다. 그 결과는 부당한 여성 혐오의 정당화이다.  



책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미드(미국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나오면 수술을 하고, 일드(일본 드라마)에서 의사는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에서 의사는 연애를 한다. 미드에서 경찰이 나오면 범인을 잡고, 일드에서 경찰은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에서 경찰은 연애를 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의 공간은 부엌이고 남성의 공간은 거실이란 말이 있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주로 가사와 육아에 한정되어 있고 일하고 돌아온 남성에게 가정은 휴식의 공감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드물게 TV나 영화 속에서 일하는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소위 '본부장님'이나 '실장님'인 남성 주인공의 연애 상대이거나, 직장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 남성 동료들과도 협업을 잘 진행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전문직 여성이 아니라, 주로 겉돌거나 이기적이거나 주어진 일을 육아나 가사를 핑계로 남성 동료에게 떠넘기는 몰지각한 타자로 그려진다.  


여성 운동은 <원더우먼>을 어떻게 부활시켰나
여성운동은 여성 히어로를 부활시켰다. <원더우먼 탄생 스토리>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3부에서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아예 지워버렸거나 여성에 적대적이던 주류 대중문화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인 여성주의적 작업들을 소개한다. 디즈니사가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기획한 여성 슈퍼 히어로 <원더우먼>의 탄생 배경과 그에 얽힌 일화들이 흥미롭다. 1차 대전으로 인해 여성 노동력이 필요해진 상황은 <원더우먼> 같은 '특별한 여성'의 탄생에 우호적인 역사적 배경이었다. 반면 전쟁이 끝나고 다시 사회가 보수화되자 사회적 약자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면서 <원더우먼>은 초능력을 잃고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매체로 아예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미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재확산이 어떻게 <원더우먼> 캐릭터와 그의 초능력의  부활을 가능하게 했는지 알려준다.


3부의 마지막 장 <디지털 남성성>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 혐오의 이미지와 여성 혐오 담론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내는 일부 젊은 남성들의 디지털 여가문화를 분석한다. 주로 게임, 포르노그래피,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젊은 남성들의 디지털 문화 공간에서 반여성적이고 마초적인 여성 혐오주의가 어떻게 생겨나고 전파되며 확대되는 지를 이 책의 유일한 남성 저자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들은 이 장을 통해 10대, 20대 들이 주로 이용하는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여성 혐오적 게시물에서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대표적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급속 확산되고 있는 왜곡된 여성관과 여성 혐오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 짧은 리뷰에 다 담지 못한 이 책의 보석 같은 내용들이 너무 많다. 이 책의 제목이 <을들의 당나귀 귀>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주로 여전히 갑보다는 을의 지위에 있다. 그리고 그 불평등한 현실은 TV나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불평등한 여성의 현실과 대중문화에 반영된 왜곡된 여성상을 비판하며, 부당한 여성 혐오의 담론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을 매체는 여전히 부족하다. 어떤 정치적 구호나 학술적 논쟁보다 TV나 영화, 인터넷 매체 등 대중문화 속에 투영되고 재현된 왜곡된 여성상은 그 폐해의 강도와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하고 무겁다. 대중매체 속 반여성적 문화담론은 우리의 의식을 무의식 중에 잠식하며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을들의 당나귀 귀>에 귀 기울이는 이유이다.  그리고 남성이건 여성이건,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이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귀 기울여야 할 을들의 목소리, <을들의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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