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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n 07. 2019

오빠가 결코 설명해 주지 않는 것

리베카 솔닛, 맨스플레인 현상 뒤에 숨은 남성의 폭력성을 폭로하다


한 여성이 아니 어떤 존재가 흰 빨래를 널고 있다. 그림 속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기에 단정할 수 없지만 하이힐을 신고 있고, 일부 드러난 몸의 윤곽과 집게를 꽂는 손으로 추측컨대 빨래를 널고 있은 여자의 모습인 듯하다. 그러나 그림 속 주인공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신체의 일부, 손과 발의 일부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하이힐을 신었다. 하이힐을 신은 채 침대 시트인 듯한 하얀 빨래를 널고 있는 손만 보이는 여성. 흰 빨래와 그 빨래를 널고 있는 주인공의 검은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그림은 멕시코 태생으로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 중인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리고 미국의 사회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 men explain things to me>의 표지 그림이다. 저자는, 혹은 편집자는 왜 이 그림을 이 책의 표지로 선택했을까?   총 7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의 중간중간에도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다른 그림들이 등장한다. 

Ana Teresa Fernandez, Untitled (Performance documentation) OIL ON CANVAS, 72″X60″





'오빠가 알려줄게'는 뭐가 문제란 말인가

리베카 솔릿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지칭하는 맨스플레인 mansplain이라는 단어의 탄생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이다. man과 explain을 합성한  이 신조어는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 사전에 게재되었다. 2014년에는 호주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했다. 이제는 언론계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인 '맨스플레인'은 쉽게 말해서 '오빠가 알려줄게'이다. 즉,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남성이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태도'를 지칭한다. 나아가 '맨스플레인'은 '남성이 대화에서 성차별적인 태도로 여성의 말을 자르거나 폄훼하는 일'을 나타낼 수도 있다.

리베카 솔릿,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창비

이 책의 저자인 리베카 솔릿이 'mensplain'이라는 이 신조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의 첫 번째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이 단어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음에는 틀림없다. 솔릿은 이 책에서 '여성에게 무엇이든 설명하려는 남성'의 우월적 태도 속에 숨은 폭력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은 날카롭고 치명적이어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부터 '나는 그렇지 않은데'까지. '여성에게 설명해주기 좋아하는 남성'들의 권위주의적 심리와 우월적 태도에서 분석을 시작해서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의 폭력성을 고발하기에 이르면 이 책을 덮고 싶은 남성 독자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mensplain : 남성이 대화에서 성차별적인 태도로 여성의 말을 자르거나 폄훼하는 일


하지만 솔릿 자신이 밝혔듯이, 저자는 "남자들 중에서도 일부가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 들고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으려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지 결코 모든 남자들을 매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알고 상대가 모르는 것을 상대가 내게 가르치려 들 때다."라고.  


'자꾸 가르치려 드는 오빠'는 어떻게 강간범이 되는가

솔릿이 '자꾸 가르치려 드는 남자'의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의 문화적 토대를 고발하는 과정은 충격적이고 경이롭다. 우리 사회도 결코 이 '강간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리고 최근에 일어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대중들의 태도에서 '맨스플레인'의 본질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에. 사회문제에 대해 진보적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도 여성문제에 있어서만은 보수적인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 한 사례가 이 'mensplain'이라는 용어를 조롱하듯 '우먼스플레인'이라는 타이틀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국내 '진보'인사의 팟캐스트도 있었다. 


'자꾸 가르치려 드는 오빠'의 태도와 사고의 근저에는 여성을 남성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할 빈그릇으로 보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숨어있다.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는 여성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사고와 여성의 말에 대한 불신이 숨어있다. 우월한 내가 가르쳐 주어야 할 대상인 여성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남성 우월적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청취하는 법정에서도 반복된다.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보다는 가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피해자는 진술은 일관성이 없다며 배척된다. 예를 들어 일부 아랍국가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 강간자의 주장을 반박할 다른 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자신이 당한 강간을 스스로 증언할 수 없다. 당연히 그런 진술을 해줄 남성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가르침을 주어야 할 대상인 여성의 말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은 이런 남성 우월적 태도의 당연한 귀결이다.


무언가 설명해 주기를 좋아하고 자꾸 가르치려 드는 오빠는 정말 강간범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은가? 왜 그런가? 친절하고 다정한 오빠는 자신의 지식으로 여성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상대 여성이 이에 반발하고 저항한다면 싸움이 시작된다. 행여 상대방 여성이 오빠의 생각을 부정하며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오빠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고까지 느낀다. 그리고 그녀를 침묵시키지 못하면 아예 그 존재를 제거하려고 든다.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저자는 이 맨스플레인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많은 여자들은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과의 싸움에서 짓밟혔다.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왜 사람들은 여성의 말을 일축하려는 충동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런 비난이 왜 그렇게 자주 여성은 대단히 부조리하거나 히스테릭하다는 비난으로 빠지는가?"


"침묵은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말하기를 어렵게 만들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내면의 억제, 자기 의심, 억압, 혼란, 수치심, 두려움. 다음, 기어이 말하고 나선 사람을 침묵시키려는 세력들이다. 창피를 주든, 괴롭히든, 죽음을 낳는 폭력까지 포함하여 노골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든 해서 말이다. 마지막, 설령 이야기가 말해지고 화자가 직접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은 경우라도, 이야기와 화자의 신빙성을 깍아내리는 세력이 있다. 비밀과 침묵은 범인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저자가 말처럼 여성의 주장을 억제하고 침묵시키려고 하는 단계적 시도들, 여성주의적 담론에 대한 조롱과 그 발화자에 대한 위협과 괴롭힘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댓글에서 너무나 쉽게  목격된다. 남성이 주로 설명하고 가르치려 드는 사회, 여성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회, 나아가 여성이 자기주장을 하거나 남성의 주장에 맞서는 경우 그런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은 끔찍하다.


"미국에서는 매일 약 세명의 여자가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 미국에서 임신부의 주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6.2분마다 한 번씩 경찰에 신고되는 강간이 벌어지고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살면서 강간을 당하는 나라이다. 또한, 총에 맞아 죽은 여성들의 3분의 2 가까이는 현 파트너나 전 파트너에게 살해되었다. 미국에서는 9초마다 한 번씩 여자가 구타당한다. 배우자의 폭행은 미국 여성의 부상 원인 중 첫 번째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87,000 건이 넘는 강간이 벌어지지만 모든 사건은 제각각 동떨어진 일화로만 묘사된다. "


이른바 '강간 문화'가 만연한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이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런 미국 사회와는 많이 다른가? 정말 그런가?


저자는 미국처럼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강간 문화'로 개념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강간 문화의 주요 특성은 여성 혐오 언어의 사용,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도라고 요약한다.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와 안전은 경시하는 사회가 구조화된다. 이런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강간범이 아니고 대부분의 여성들도 강간의 피해자가 아님에도 강간 문화는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 행동방식을 제약하는 문화적 원리로 작동하는 강간 문화는 모든 여성들이 강간을 염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강간 문화에서 자유로운가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강간이 만연한 '강간 문화'에서 강간의 동기는 남자가 여자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녀와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었다. 남자의 권리가 여자의 권리에 앞선다는 생각, 혹은 여자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여성의 신체에 근거 없는 권한을 주장하게 되고 이는 폭력이나 강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강간 문화의 근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분노와 욕망은 늘 함께 존재하며, 언제든 에로스가 타나토스로, 사랑이 죽음으로 바뀔지 모르는 위험이 존재한다."



카산드라의 저주가 말하는 것

자꾸 가르치려 드는 남성과 여성의 말을 불신하고 침묵을 강요하려는 남성 우월적 억압과 관련하여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로이의 공주였던 카산드라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언할 줄 알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저주를 받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게 된 것이 그녀가 아폴론과의 섹스를 거부함으로써 아폴론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신화가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화 속에서도 여성이 자기 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여성의 말이 신뢰성을 잃는 것이 연관된 일이라는 관념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인정하는 것과 그 주체의 언어과 사유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아니라 자신들이 상대방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남성들은 쉽게 강간 범죄를 저지르며 여성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자꾸 설명하기 좋아하고 가르치려 드는 오빠도 이 사실만은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다.




Ana Teresa Fernandez, Untitled (Performance documentation) (20 X 25 CM), 2008

안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그림 속 주인공은 여성임에 틀림없다. 저자 자신도 책 속에서 그림의 의미를 설명했듯이 그림 속 여성은 존재가 모호하다.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선명하다. 그림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고유한 신체를 잃어버리고 빨래 속에 파 묻혀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가사노동이나 육아를 상징하는 빨래 속에 얼굴과 몸을 파묻은 채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림 속 여성이 신고 있는 하이힐은 이 그림 속 주인공의  욕구와 소망이 가정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그 사회에는 그림 속 여성의 신체와 언어에 대한 억압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자체를 지우려는 폭력적인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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