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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Aug 27. 2019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8년 12월 12일  실시_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선거는 우리 선거역사상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선거였습니다. 이번 선거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구에서 1구 2인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지속되었지만, 지역선거구는 77개로 늘어 지역구 의원정수도 154명으로 다소 늘어났습니다. 한편 간접선거로 선출된 유신정우회(77명) 또한 유지되었고, 이에 따라 제10대 국회의원은 모두 231명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점차 증가하던 시점에서 정부 여당 쪽에서는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의 압승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서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지역구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복수공천을 지양하고 1선거구 1인 당선을 목표로 77명을 공천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선거결과 민주공화당은 68명, 신민당은 61명, 민주통일당은 3명이 당선되었고, 무소속 당선자는 22명 당선되었습니다. 심지어 정당 득표율 면에서는 야당의 득표율이 여당의 득표율을 앞서는 이변을 보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담화문

선거결과 여당은  중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로 인하여 더 많은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고, 여기에 더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회의원인 유신정우회가지 합해 의원정수의 과반인 145석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선거구의 전체 득표율에서는 야당인 신민당 32.8%를 득표하고,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31.7%를 득표하여 야당이 여당보다  1.1% 더 많이 득표한 사실 상 야당의 승리로 끝난 선거였습니다.


후보자 선거벽보


이번 선거의 투표율도 77.1%로 5.16 군사 쿠테타 이후 역대 국회의원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번 선거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국 득표수에서 여당이 제1야당에 뒤진  최초의 선거였던 이번 선거는 어둡고 암울한 유신시대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계기였습니다. 유신체제 하에서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제도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정치권에 국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권에 대한 통제의 기능을 발휘한 선거였습니다.


선거 홍보 포스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이후 유신체체 반대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민적 저항은 더욱 탄력을 받아 결국 유신체제는 1년도 못 가서 붕괴합니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일년 뒤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살해되고 유신체제는 종말을 맞았지만 제1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날과 같은 날짜인 12.12일 발생한 신군부의 군사 정변으로 인해 전두환이 권력 장악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의 시련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나마 새벽은 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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