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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Feb 09. 2020

선거와 현수막은 이별할 수 있을까?

21대 총선 D-65일 풍경 _21대 총선을 기록하다 6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한 예비후보자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현수막을 걸었다가 입주민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해당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는 20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의 한 층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예비후보자가 설치한 현수막이 너무 큰 게 문제였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상으로는 예비후보자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설치할 수 있는 현수막의 크기나 수량, 형식, 재질 등에 대한 제한은 없다. 따라서 해당 예비후보자는 건물주로부터 사무실을 임차하면서 현수막을 전체 건물에 게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현수막을 설치했던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선거 현수막 공해

하지만, 선거법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그 빌딩은 해당 예비후보자 혼자서 전체를 사용하는 건물도 아니고. 다른 층에는 다른 입주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무리하게 큰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관례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해당 예비후보자는 선거사무소를 선관위에 신고하자마자 해당 건물 전면부 면적의 90% 정도에 해당하는 크기의 현수막을 입주자들의 사전 동의나 예고도 없이 전격 게시했다. 그 결과는? 



다음날부터 하루아침에 일조권과 조망권, 창문 오픈권(?)을 잃어버린 입주민들을 불편을 호소하며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해당 예비후보자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해당 예비후보자가 이미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게시한 현수막이고 건물주와는 현수막 사용에 대한 합의를 한 사안이라 해당 현수막을 철거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자  입주민들은 이런 예비후보자의 횡포(?)에 대해 언론에 고발을 하여 주요 방송사가 취재를 나오기도 했다. 해당 현수막이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현수막이라 내가 근무하는 선관위에도 항의와 비난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회는 국민을 위한 입법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선거 현수막은 함부로 철거할 수 없어

하지만,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당 현수막은 현행 실정법 상 위법한 현수막이 아니어서 선관위에서는 해당 현수막을 강제 철거하거나 해당 예비후보자에게 해당 현수막의 철거를 위한 그 어떤 제제나 조치도 할 수 없다. 심지어 해당 현수막은 선거법 상으로는 합법적인 현수막이기에 그 현수막을 무단으로 훼손하거나 철거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선거운동 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선거법에 선거사무소의 현수막 크기나 수량에 제한이 없는 한 선관위의 제재는 어렵다. 다만 선관위 직원으로서는 해당 예비후보자에게 선거권자인 입주자들의 큰 반발을 사는 선거운동이 얼마나 역효과를 초래하는지를 최대한 설명하며 원만한 해결을 권유, 권장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선거법 체계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한다.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에 설치한 현수막뿐만 아니라 선거기간에 거리에 게시되는 수많은 후보자들의 거리 현수막도 시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기도 하고, 교통신호기를 가리기도 하고 상가 건물의 간판을 가리기도 해서 시민들의 영업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거리 현수막들도 현행 선거법 상으로는 해당 선거구 안의 읍면동 수의 2 배수 이내에서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교통신호기를 가리지만 않으면 불법이 아니기에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 따라서 선거기간이 되면 후보자들이 게시한 선거운동용 거리 현수막이 가게 간판과 점포를 가린다며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지만 이런 민원 역시 선거법 개정이 없는 한 선관위로서도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 그저 민원인에게 후보자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민원인의 입장을 소상히 전달해서 가급적 이동 게시하기를 권유할 뿐 이동 게시나 철거를 강제할 권한은 선관위에게 없다. 



지나치면 권한 남용, 모자라면 직무유기

현수막만 문제가 아니다. 선거기간에 거리 유세를 위해 이용하는 유세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도 음량 제한은 없기에 주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불편을 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법 개정 없이는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런 선거소음에 대한 민원을 선관위에 제기해봐야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오히려 해당 후보자 측에 지역에 사는 선거권자임을 밝히고 항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 표라도 아쉬운 것은 후보자이므로. 사실 행정 기관인 선관위로서는 실정법에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법집행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를 벗어나서 권한도 없는 과도한 규제를 가하면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저해하고 권한 남용이 된다. 해야 할 일을 선관위가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가 되겠지만 법에도 규정도 없고 근거도 없는 제제와 조치를 가하는 것은 권한의 남용으로 행정기관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기존 선거운동 방식 이대로 좋은가

따라서 선거운동용 현수막이나 선거소음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선관위 사무실로 거센 항의를 하는 것은 혹시 기분전환이 될지는 모르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사실 선거기간 중 선관위 사무실로 걸려오는 민원전화의 50% 이상이 이런 현수막 민원, 유세차량의 선거소음으로 인한 항의 전화다. 당연히 시민들의 불편과 격해진 감정은 이해하지만, 문제는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즉, 문제는 법 개정이다. 그리고 법 개정은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법 개정에 대한 청원과 국회에서의 법 개정에 대한 시민적 요구가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기존 선거법의 주요 수혜자들이 주로 입법자들인 국회의원이기에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선거법에서 정한 주요 선거운동 방식은 명함 배부, 현수막, 선거유세 차량, 선거공보, 선거벽보 등 너무 제한적이어서 오히려 선거기간 중에 유권자와 후보자의 접촉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다수  외국 사례처럼 일반적으로 폭넓게 허용하고 개별적인 금지 규정만 두는 식으로 광범위한 선거운동을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때문에 후보자들은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목말라 현수막 크기에 집착하고 선거 유세차량의 음량을 최대로 높이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우리나라 시민들은 선거 때마다 고막을 찢는 듯한 선거소음과 넘쳐나는 현수막 때문에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불편을 겪어야 할까?  그리고 왜 후보자들은 그다지 큰 효과도 없어 보이는 선거운동용 현수막과 선거유세 차량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새로운 대안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변화와 함께 현수막과 거리유세 중심의 기존 선거운동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선거운동의 중심도 이제 개별 후보자 중심에서 정당 중심으로, 정책과 공약 중심의 정책대결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 어느 예비후보자의 인지도 제고를 위한 무리한 욕망을 담은 현수막을 보며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D-65일에 든 생각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알려드립니다. 여기 적은 모든 글들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와 생각에 불과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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