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함께 좋아하는 이다혜 기자의 에세이집 <출근길의 주문>을 소리 내어 읽고 녹음을 끝냈다. 사실, 책을 읽은 지도 녹음을 마친 지도 꽤 됐지만 이제야 짧은 리뷰를 남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분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의 주요 타깃은 2,30대 직장 여성들을 향하고 있지만 남자인 내가 읽어도 주장의 보편성과 논증의 타당성 때문에 쉽게 공감된다.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
'직장 여성'과 '직업 여성'의 차이
본격적인 리뷰를 하기 전에 난 평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직장 여성'이라는 표현과 유사한 듯 하지만 어감이 다르고, 주로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직업여성' 이란 표현이 사용된다는 점에 관한것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직장 남성'이란 표현은 있어도 '직업 남성'이란 표현은 없지 않나? '직장 여성'이란 표현과 별개로 '직업여성'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이유와 그 사회,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어쩌면 이 책의 주제와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여성'은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이해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남성의 원초적 쾌락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업종에 종사하는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것이다. 그 표현 속에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가져야 하는 직업의 범위를 차별적, 인위적, 가부장적으로 제한하는 굴절된 의식이 숨어있다. 그 왜곡된 의식 속에선 여성의 '직업'이란 겨우 남성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에 국한된 일이었고, 또 여성의 '직업'을, 그리하여 '직업 여성의 영역'을 그렇게 영원히 제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은?
제도적 영역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법적 지위가 평등하며, 성별에 의한 차별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태도라고 모두들 인식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필자는 구한말 개화기가 아닌 21세기 한국 여성이 직장과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대면하는 상황은 여전히 녹녹지 않음을 보여준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외견상 동등한 듯 보이지만 실제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과 남성을 경쟁에 내몰며, 남성들에게는 잘 들이대지 않는 부당한 비교의 척도와 차별적 평가의 기준을 일터의 여성들에게만 적용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마흔을 넘긴 직장 여성으로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마치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가 '오늘은 덤이다'라고 생각하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를 같은 여성들에게 서로 묻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여자가 부드러운 맛이 없다?
이 책은 그런 직장 여성들의 차별적 상황을 예리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려낸다. 같은 조건이라면 남성보다 여성이 더 외모나 인성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기 쉽고, 자신의 의사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또렷하게 표현하는 여성에 대한 거부감은 필자와 같은 전문적인 직업세계에서도 팽배해있다. 직장에서 여성은 웃지 않으면 안 웃는다고 욕을 먹고, 웃으면 너무 헤프게 웃는다고 욕을 먹는다.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일과 성과로 깎아내릴 수 없는 경우, 남성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준거인 인성과 태도, 몸짓과 말투를 문제 삼아 여성을 평가절하한다. '일은 잘하는데 말투가 건방지다'는 둥, "똑똑한데 인간미가 없다'는 둥, "여자가 부드러운 맛이 없다"는 둥.
이 책은 국민 대부분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빛의 속도로 21세기를 관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대다수의 직장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차별의 언어와 태도, 상황을 지적하고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터의 여성들이 어떤 말과 글로 자신의 의사를 올바로 표현하고, 쉽게 빠지기 쉬운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의 프레임을 벗어나 서로 연대하며 균형 있게 살아갈 방안을 제시한다. 각자가 일터로 향하며 외는 출근길의 주문이 무엇이든 일터의 여성들은 여전히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전사에게 필요한 무기는 모두 동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디오북 필요하시면,,,
마지막으로, 작가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처음 만난 일하는 여성 두 분,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 싶었지만 두 분이 세월의 잔인함으로 책을 읽지 못하신다고 적어 놓은 부분이 내 눈에 띄어 든 생각이 있다. 작가가 원하신다면, 내가 소리 내어 낭독하고 녹음한 음성본이라도 두 분께 들려드린다면 두 분이 기쁘고 즐거워하지 않으실까? 작가의 연락을 기다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