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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Dec 22. 2018

순교자로 연출된 혁명가 마라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

1793년 7월 13일 프랑스의 급진주의자 혁명가 마라가 자신의 욕조에서 미모의 여인에게 살해당합니다. 암살자의 이름은 샤를로트 코르데. 코르데는 당시 혁명의 속도와 공화제 수립, 국왕처형에 대해 마라가 속한 급진 자코뱅파와 대립하고 있던 온건 지롱드파 소속 당원이었습니다. 당통과 마라, 로베스피에르로 이어지는 공포정치로 정치적 대립과 분열이 극에 달했고, 자코뱅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마라는 탁월한 연설과 언변으로 혁명의 적으로 몰아부쳐 단두대로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건파에 속했던 코르데는 마라를 암살해야 이 피의 숙청이 끝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7월 13일 코르데는 마라에게 전할 편지가 있다며 마라의 집을 찾았고 욕실에서 그녀가 전해준 편지를 읽는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아 살해합니다.

샤를로테 코르데와 폴 자크 에메 보드리가 1860년에 그린 마라의 죽음

마라의 갑작스런 죽음에 혁명세력은 충격에 빠졌고 그를 기리기 위해 같은 자코뱅파이자 당대의 위대한 화가 다비드에게 마라의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을 부탁합니다. 이에 혁명의 예술적 대변인이자 열렬한 선전가였던 다비드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아름답고, 숭고하게 혁명가 마라의 죽음을 순례자의 죽음으로 미화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마라의 죽음> (1793년, 165*128cm,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관)

먼저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내려오는 천상의 빛은 죽은 마라의 창백한 몸을 비추는 신의 손길처럼 묘사되고,  단순하게 처리된 어두운 배경 속에서 마라의 몸은 더욱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피부병을 앓던 마라가 식초에 적셔 머리에 두른 흰 터번과 창백한 시체의 피부 등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핏자국은 마라의 죽음을 더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라는 오른 손에는 깃털로 된 펜을, 왼손에는 코르데가 전해준 편지를 들고 있고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793년 7월 11일.
가난하고 비참한 시민인 저는 민중의 벗인 당신의 자비를 기대합니다.
<마라의 죽음> 부분

그리고 마라의 엄지손가락은 편지 속의 자비라는 단어에 닿아 있습니다. 마치 잔인하게 암살당했지만 마라는 죽는 순간까지도 오른손에는 펜을 쥐고 민중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자비로운 민중의 대변인임을 암시 하는것입니다. 완벽한 절제미와 단순한 구도를 통해 신화 속 영웅을 찬미해왔던 신고전주의의 대가답게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 <마라의 죽음>은 다비드가 마라의 살해현장을 목격하고 생생하게 재현한 듯 보이지만 사실 다비드는 마라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라의 죽음을 극화시키기 위해 차용한 구도는 자신이 존경하던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구도는 결국 마라와 예수를 동일시하는 것이며, 성모 마리아가 비탄에 잠겨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의  전형적인 구도를 차용해서 마라의 죽음을 인간적 죽음을 넘어 숭고하게 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라의 죽음>에서 다비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예술의 도구적 사용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벨리니의 피에타와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

화면 오른편 하단부의 탁자에는 "마라에게 다비드가" 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마치 마라에게 바치는 다비드의 추모사이자 묘비명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비드는 혁명을 위해 싸우다 암살당한 마라의 죽음을 순교자로 미화하고 정지적 선전의 도구로서 미술이 어디까지 갈수 있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이후 혁명세력이 몰락한 뒤 보여준 다비드의 변신 또한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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