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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Dec 23. 2018

엄마 이전에 여자

임경선의 책 <엄마와 연애할 때>

#이 글은 제가 미래의 딸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써 본 글입니다.

 

언젠가 아빠가 그녀의 육아 방식을 팟캐스트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아이들을 대충 키워야 한다."라는 점이었단다. 얼핏 생각하면 이 '대충'이 양육에 있어서 방임과 무신경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데, 그녀에게서는 무엇보다 이 '대충'은 '자연스러움'이자 '자율성'이고 '반성적'이라 아빠는 생각한단다.

캣우먼 임경선의 에세이집 <엄마와 연애할 때>는 통상적인 육아기, 양육기와는 달리 호들갑스러운 '아이 중심적'인 양육기가 아니라 '여성적'이면서 동시에 첫 양육의 과정에서 한 여성으로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의 변화를 담백하게 그린 주체적 양육기란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어. 

© branch_portraits, 출처 Unsplash


"나는 아이에게 '너는 이런 아이였단다' 라며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알려주기보다는 '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 하며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자연스러운 '대충'은 결코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토록 사랑스러운 존재가 가져다줄 수도 있는 고통스러움을 솔직한 게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

"사실, 너한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나는 네가 옆에 없을 때는 네 생각하나도 안 나거든? 
아니, 나한테 아이가 있다는 것도 종종 깜박하곤 해."
"나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믿지 않는다. 아이들의 잔인함은 순수한 만큼 더 예리하고, 

그에 따른 상처도 선명하다. "

이 얼마나 솔직한 엄마의 고백인가? 
그리고 '날 것 그대로의 육아'의 과정에서 그녀가 겪는 감정의 변주를 이렇게 가감 없이 토로하고 있어.
엄마와 아이의 교감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거나, 마냥 고통스럽기만 한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라. 복잡 미묘하면서도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밀당의 과정임을.


"아아 정말, 아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너무 괴롭다. 너무 힘들다 아 진짜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 하고 항복하는 순간, 내가 딱 도망치고 싶은 그 순간,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눈을 맞추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세상에, 밀고 당기기도 이런 밀고 당기기가 없다." 
"어떤 때 나는 윤서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머리가 휙 돌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반면 어떤 때는 그 사랑이 너무 고통스러워 너무 부담스러워 자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이른바 짐승의 세월이라 표현되는 오로지 본능과 직감에 의존하며 버텨내는 여자의 임신과 출산, 신생아 육아 시기를 서른일곱의 나이에 지나치며 그녀가 깨달은 통찰은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거라 아빠는 생각해. 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필요한 억지스러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서로 교감하는 자연스러움을 견지하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서로에겐 가장 행복하고 완벽한 존재일 수 있음을 깨닫는 일.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다들 그래 무조건 이래야만 해 같은 생각에 휘둘리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전에 엄마가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단 불완전한 게 백배 낫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정말로 가급적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뿐인 것 같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뭔지 파악하고 제멋대로 추구할 능력을 키울 것이다."


나는 결코 아이에게 네가 나의 꿈이고 희망이고 미래야, 너의 꿈이 나의 꿈이지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그 말이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라고는 말로 바뀔까 두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빠가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 골격이라고 파악한 점은 엄마라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된다는 성찰이야. 엄마와 아빠는 너를 기다리며 너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려고 할 테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기준과 판단을 너에게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또한 부모의 온전한 사랑이라는 의무감 속에서 엄마와 아빠의 행복을 일방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와 존중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야. 그러므로 그녀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다짐은 우리와 너 사이에서도 유효해.

아이 인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아이이고
부모는 어디까지나 초대받지 않은 조연, 
나 내 인생 살 테니 넌 네 인생 살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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