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99년에 그린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라는 작품은 고대 로마의 건국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고대 역사가인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고대 국가 로마는 건국 후 아이를 낳을 여자들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축제를 연다는 구실로 이웃나라 사비니 사람들을 초대한 뒤 로마 남자들이 사비니 왕국의 여자들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아이를 낳아 로마 시민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비드 이전에도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였습니다. 니콜라 푸생도 이와 관련된 작품 두 개를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란 제목으로 그렸고, 파울 피터 루벤스도 <사비니 여자들의 납치>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피카소도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다른 화가들은 사비니 여인들을 약탈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는 달리 다비드는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에서 납치되어 약탈당하는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싸움의 중재자로 나선 사비니 여인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딸과 누이들이 로마 남자들에 약탈당한 지 어언 3년이 지나자 사비니 왕국의 남자들은 카티우스 황제의 지휘 하에 복수를 하기 위해 로마로 진격합니다. 다비드는 로마와 사비니 왕국 간의 격전이 벌어지려던 순간 자신들의 아이들과 함께 전장에 뛰어들어 이 싸움을 말리려는 사비니 여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그림 한가운데서 양팔을 크게 벌려 두 황제의 싸움을 막으려는 여인이 사비니 황제 카티우스의 딸 헤르실리아입니다. 화면의 오른쪽에 늑대 그림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창을 던지려는 남자가 로마 황제 로물루스, 왼편의 칼을 든 남자가 사비니 왕국의 황제 카티우스입니다. 로마 황제 로물루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흰 옷을 입고 싸움을 말리는 헤르실리아 말고도 아이를 치켜들고 마치 '이 아기들은 바로 당신의 손자, 조카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여인도 있고,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카티우스의 발에 매달려 울부짖는 여인, 바닥에서 천진난만하게 기어 다니며 놀고 있는 아기들 모습도 보입니다.
다비드의 의도는 비록 3년 전에 약탈을 통해 사비니의 여자들이 로마인의 아이를 낳았지만, 이젠 이 전쟁으로 자신들의 아버지와 오빠가 전쟁을 통해 죽이려는 남자들이 자신들의 남편이거나, 자신들의 남편이 죽여야 하는 남자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이거나 오빠가 되어버린 비극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쪽이 희생뿐인 전쟁을 멈추고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이 그림을 그린 다비드의 의도였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나 신화를 통해 교훈을 전하는 역사화를 주로 그린 신고전주의의 대가답게 다비드는 아기들과 남자들의 벗은 몸매를 통해서 그리스 조각상의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배경에 있는 성벽이 로마시대라기보다는 프랑스혁명 당시 무너진 바스티유 감옥과 유사합니다. 1799년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그림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를 감옥에서 구상했습니다. 열성 자코뱅파 혁명당원으로 프랑스혁명의 선봉에 섰던 다비드는 1793년 마라의 죽음,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반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자 반대파에 의해 감옥에 갇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화가로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을 뿐이라 항변하고 이제는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이런 그림을 세상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다행히 다비드는 그의 예술적 재능 덕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를 모면하고 이후에는 나폴레옹의 궁정화가로서 대변신을 하며 반혁명과 독재의 예술적 전위로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