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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Dec 26. 2018

이미지의 유혹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1년, 259*221cm, 프랑스 말메종

혁명세력이 몰락한 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다비드가 이제는 반혁명의 거두 나폴레옹을 위해 1801년에 그린 그림이 바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입니다. 아직 황제에 오르기 전인 1800년 5월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생 베르나를 협곡을 지나 알프스를 넘어갑니다.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 붉은 망토를 두른 나폴레옹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멋진 갈기가 날리는 백마의 앞발을 높이 추켜올리며 오른손을 뻗어 정상을 가리키는 용맹하고 늠름한 장군의 기개를 맘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잿빛 배경으로 칠해진 하늘의 먹구름이 날씨조차 험난했음을 암시하지만 나폴레옹은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연한 모습으로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용맹무쌍한 나폴레옹의 영도에 따라 프랑스 병사들은 험난한 바위틈을 헤치며 알프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말발굽 옆 바위에는 나폴옹의 성 보나파르트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칼) 대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비드가 나폴레옹을 누구와 동일시하고 싶어 하는지 혹시라도 관객들이 모를까 봐 친절하고 노골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완성되자 나폴레옹은 매우 만족하여 동일한 작품 3점을 더 그리게 했습니다. 거기다가 다비드가 한 점을 더 그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총 5점이 전해 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치는 영웅의 이미지는 바로 다비드의 이 작품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중고등학생 참고서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학생들에게 영웅적으로 입시 준비에 매달리도록 독려(?)했던. 


그러나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은 팩트체크를 해보면 사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사실 나폴레옹은 다비드의 그림에 일일이 간섭하며 자신이 어떤 그림을 원하는지 너무나 분명히 지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비드는 실제 나폴레옹을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다른 그림에서 백마의 모양을 차용해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834년 경 프랑스의 화가 폴 들라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 역사적 사실로서의 나폴레옹의 알프스 원정을 보다 진실에 가깝게 그리고 있습니다.

들라로슈의 나폴레옹, 1834년 경

들라로슈의 작품처럼 실제 나폴레옹은 키가 매우 작았고, 알프스를 넘을 당시에도 말을 탄 것이 아니라 안내자가 이끄는 노새를 탔습니다. 산악지대를 가기에는 말보다는 노새가 덜 위험했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병사들을 먼저 보낸 뒤에 자신은 나중에 혼자서 알프스를 넘었습니다. 다비드의 그림처럼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날씨도 흐리기보다는 맑고 화창했다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 미화의 차이

다비드는 이 작품을 그린 뒤 나폴레옹의 총애를 얻어 몇년 뒤에는 그의 궁정화가가 됩니다. 나폴레옹과 다비드 모두 예술의 정치적 효과와 정치선전의 도구로서 미술의 기능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나폴레옹은 자신의 대관식을 다시 다비드에게 그릴 것을 부탁하고, 다비드는 다시 한번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총애를 얻어 궁정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6부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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