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너건 감독,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바닷가의 도시 맨체스터에서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은...
바닷가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운명은 우리를 어디로 휩쓸어 갈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었으며, 그 운명이란 파도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기도 하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운명은 변덕스러운 파도처럼 또 어쩔 수 없이 그를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겉으로는 무척이나 한가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보스턴 근교의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어쩌면 자신의 가장 잘 나가던 때, 시간적으로 '최대의 풍경'이었을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었고, 어린 조카와 형,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의 추억과 사랑을 나눴을 그곳,
주인공 리는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을 떠나 홀로 쓸쓸하게,
표정 없고 무감각한 건물 잡역부로 살아가야 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심연엔 거친 소용돌이를 품고 있는 바다처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통을 전화를 받고 다시 운명처럼 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예정되어 있었던 형의 죽음과 그로 인해 마치 '바구니에 담겨 강가에 던져져 떠내려 온' 어린 조카 때문에
그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 것.
이 영화는 그 운명의 장난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뒤에 두고 그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번에 다시 그가 그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날의 일과 그 이후의 일로 인해 사랑하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가했는지.
그러나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왜, 어떻게 상처를 남기고 서로 떠나야 했는지를 강렬하게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의 깊이와 여파를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담담하게 그린다.
격한 감정의 표출 장면이 그다지 많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사용된 배경음악을 효과적으로 배치한 연출은
영화의 완성도를 매우 높여준다.
그림같이 평화롭고 한가로운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를 통해 이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삶에서 우리 인간이 겪게 되는 고통과 회한의 순간들이 대부분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개될 수 있으며,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그런 순간들로 인해 우리는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되지만
그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길도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온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상처는 생각처럼, 말처럼 그렇게 쉽게 치유되지는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