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쉐르픽 감독, 캐리 멀리건 주연의 영화 <언 에듀케이션> ,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틀에 박힌 학교교육과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있던 고등학생 제니에게 갑작스레 '어른의 사랑과 삶'이 찾아온다. 모범생이었지만 학교와 가정의 틀에 박힌 훈육에 내심 질려가고 있었던 제니의 내면에서는 이 유혹과 충동을 참을 길이 없었다. 결국 제니의 선택은 제도권 교육을 박차고 나가 남들보다 앞서 결혼과 사랑이라는 삶의 본 궤도에 올라서는 것.
그러나 완벽할 줄 알았던 어른의 사랑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했고, 눈부시기만 할 줄 알았던 낭만과 유혹은 파멸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혼돈 속에 허우적 대던 제니에게 부모의 사랑과 기대로 가득한 가정은 더 이상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 갈 곳을 몰라 헤매던 제니에게 자신이 박차고 나온 학교가 공교롭게도 유일한 도움이자 대안이 되는데......
이 영화 속에는 세 종류의 '교육'이 등장한다. 아니 우리가 그 어원적 의미에서 '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세 가지가 등장한다. 교육하다의 educate는 '끌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근 'ducere'에 접두사 ex가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면 교육의 어원은 '~에 끌다, ~로 이끌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란 결국 '우리 내면의 무언가를 고양시키고 강화시켜 바람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소양을 이끌어내는 일'인 것이다. 교육이란 뜻의 독일어 erziehen 역시 '~로 이끌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교육이란 단어 die Bildung 또한 '세우다, 형성하다, 이루다'는 의미의 bilden(영어: build)에서 유래한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교육적인 것'은 첫째, 우리가 보통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의무적으로 보편적으로 받아야 하는 제도권 학교교육이다. 그래서 영화는 고등학생 제니가 문학 수업에서( <제인 에어 Jane Eyre>를 읽는 수업)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제니의 대답은 "눈이 멀어서"이다. 정확히 선생님의 질문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샤를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 Jane Eyre>의 스토리와 연관 지어 유추해 본다면, "소설 속의 제인 에어는 왜 로체스터에게 돌아갔을까?"일지도 모른다.
제니의 이 대답 속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들어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소설 <제인 에어>에서 제인이 자신을 속이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유부남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간 것은 장님이 된 로체스터에겐 자신을 이끌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비록 자신은 숙모의 학대 속에서 그런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으나 가정교사였던 자신의 교육자로서의 본분은 바로 장님이 된 로체스터 옆에서 그를 '이끌어 주는 것'이란 생각이 아니었을까?
또한 아직은 미숙한 존재인 사춘기 소녀 제니가 갑자기 다가온 어른 데이비드의 사랑에 정신없이 경도되어 학교를 떠나 제도권 교육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결국 '눈이 멀어서'라는 솔직한 자기 고백을 암시하는 대사는 아닐까? 그리고 교육의 본질이란 결국 불완전한 삶의 단계에서 어떤 유혹에 '눈이 멀게 되는' 미숙한 존재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란 중의적 암시처럼 들린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 제인 에어와 영화 속 주인공 제니의 이름이 유사한 것은 단지 우연일까?
어른은 된 것 같은데 현명하진 못해요.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요.
영화 속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교육' 혹은 '교육적인 것'은 우리가 흔히 가정이라 부르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훈육이다. 이 가정교육은 보통 제도권 교육과는 달리 보편적이거나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상황에서 자라느냐의 우연이 크게 좌우된다. 불행히도 제니에게 주어진 가정교육은 시험성적과 상위권 대학 진학을 통한 시장에서의 우수 인적자원으로서 경쟁력 확보를 지향하는 입시위주의 제도권 교육의 하위 체제인 가정교육이었다. 그래서 제니의 부모님에겐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와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제니에겐 의외였지만 말이다. 어차피 제도권 교육의 목표와 가정교육의 목표는 제니의 부모님에겐 동일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 번째 유형의 '교육' 혹은 '교육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제니가 성장과정에서 겪은 실패 혹은 좌절이다. 질식할 듯한 입시위주, 성공지향적 교육의 목적이 일정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유지와 고급 취향의 보장, 일정 규모의 소비로 축약되어 버리고 만다면 어린 제니에게 찾아온 어른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든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제니는 오판과 실수와 배신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 제니의 실수를 통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묻고 있는 것은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조심스레 전하고 있는 그 대답은 '어른이 되어도 현명하진 않은' 수많은 제니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 그 도움을 제공하는 방법은 반드시 제도권 학교교육이나 부모의 주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가정교육뿐만 아니라 가끔은 우리가 '눈이 멀어서' 저지르기도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통한 성찰과 반성 그 과정 끝은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성장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반교육(uneducation)으로 읽히기도 하고 어떤 교육으로 읽히기도 하는 an education인 것이다. the education이 아니라!
아직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주의자)로 성장하기 전의 풋풋한 케리 멀리건의 연기를 보면서 꼭 오늘 우리 교육의 의미, 교육의 목적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며...
*이제부터 모든 영화 리뷰 말미에 별점을 추가하기로 합니다. 독자분들의 선택에 다소나마 도움이되고자하는 마음이지만 저의 주관적인 평가이니 참고정도로만 봐주시길...
오락성: ★★★
작품성: ★★★
영상미: ★★☆
완성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