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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an 09. 2019

국가가 지워버린 아이들

추상미 감독, 이송 주연의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은 한국전쟁을 다룬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전쟁과 사회>를 평가하는 글에서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전쟁의 참혹상은 개개인의 내면에 각인되었고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에 대한 공포는 한국사회에 광범하고 강력하게 자리 잡게 되었으며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조차도 통제되기에 이르렀다. 
영화 포스터

여전히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불완전하게 만드는 심리적 거부 현상으로서 한국전쟁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스스로 배우이자 연출가로 나선 추상미 감독은 바로 그 푸른 눈의 폴란드 교사들의 기억을 23세의 탈북여성 이송과 함께 조심스레 추적한다. 영화의 시작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느 폴란드 할아버지의 클로즈업된 얼굴에서 시작된다. 2006년 폴란드 국영 TV가 방영한 어느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그 미어질듯한 슬픔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긴장되고 궁금해진다.

1951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넘어가던 즈음 한국의 전쟁고아 1,500명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졌다고 한다. 1948년 북한과 수교를 맺은 '사회주의 형제국가' 폴란드는 한국의 전쟁고아를 맡아 교육해 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형제의 우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당시는 북한군이 남한 전역을 장악한 시점이었고 당연히 폴란드로 송환된 전쟁고아에는 남한 지역 출신의 전쟁고아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폴란드에 도착한 그 아이들의 몸속에서 나온 기생충 분포도가 남북한 전역에 걸쳐 있었다는 점이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던져진 아이들을 폴란드의 수용소 교사들은 진정한 사랑과 연민으로 대했고,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땅에 도착한 전쟁고아들에게 푸른 눈의 선생님들은 이내 새로운 엄마, 아빠가 되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폴란드의 교사들은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교사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키에 흰 옷을 입은 초라하고 야윈 아이들을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폴란드어를 배웠고 낯선 땅에서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자신들의 역사에서도 이 한국의 전쟁고아들처럼 주로 전쟁의 피해자로서 상처 입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폴란드 교사들은 오직 사랑과 인류애로 아이들을 대했다. 그리하여 그 교사들과 아이들 사이에는 전쟁의 상처를 뛰어넘는 교감과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러나 8년 뒤 북한은 폴란드로 이송되었던 아이들 모두를 사회주의 조국 재건을 위해 본국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아이들과 교사들은 또 다른 이별을 겪어야 했다.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다시 폴란드로 오고 싶어 하며 보내오던 아이들의 편지가 하나 둘 끊기고 어느덧 아이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쳐주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며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전쟁으로 인해 전시에 국가가 개인에게 입힌 상처에 더해 전쟁 이후에도 국가는 그 상처 받은 영혼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망각함으로써 다시 한번 상처를 입히는 것인가? 영화는 국가에 의해 강요되고 잊혀간 어린 존재들과 그들을 보편적 인류애로 보듬어 준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뒤늦게나마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의 길을 시작한다. 영화가 끝나도 한참을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일어설 생각을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락성: 

영상미: 

작품성:   

완성도: 


Daum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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