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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Feb 27. 2021

괜찮은 폭력은 어디에도 없다
- 영화 <세자매>

이승원 감독,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주연의 영화 <세자매>

'좋은 영화'를 정의하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는 분명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본 감동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어 진다면 더욱 그렇다. 하물며 아깝고 부족한 시간을 내어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고 싶어 진다면 더더욱 그 영화는 분명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자매>가 그랬다. 보고 나서 오래 기억에 남고, 무언가 할 말이 많이 떠올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영화의 주제는 선명했고, 배우의 연기는 눈부셨으며, 감독의 연출은 섬세했으며, 시나리오는 신선하고 설득력 있었다. 특히 영화 마지막의 강렬하고 눈부신 엔딩이 주는 통쾌한 감동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영화 <세자매>는 단언컨대 코로나가 지나면 다시 한번 개봉했으면 좋을 영화 중 하나다. 



폭력의 상처도 오래 지속된다


폭력은 오래 지속된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 살아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

영화는 어린 시절 자신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기억을 품고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어쩌면 아버지가 가한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이다. 그 폭력으로 인해 그녀의 내면은 이미 파괴되었고 그녀의 신체는 죽어가지만 희숙은 그저 '그지 같아서'라고 나지막이 내뱉으며 세상보다는 자신을 탓하면 삶을 살아낸다. 둘째 미연(문소리 분)은 교회 장로였던 아버지가 가한 폭력으로부터 도피해 종교의 세계에 의지하며 완벽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은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로서의 가족과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현실은 끊임없이 그녀의 위선을 폭로한다. 


괜찬지 않은데 괜찮은 척, 세 자매

어린 시절, 교회 장로인 아버지가 배다른 언니와 남동생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며 미연은 "자고 일어나면 난 아버지만 빼고 우리가 모두 죽어 행복한 천국에 간 꿈을 꿨어."라고 고백한다. 어린 미옥이 바란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인 아버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어린 남매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성폭력 등 폭력에 대한 대응은 지금도 여전히 미연의 말처럼 가해자의 책임은 묻기 어렵다.   

  

셋째 미옥(장윤주)는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어 알코올에 의지하며 과거의 기억 중 행복한 기억만을 되새김질하며 버텨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한 가부장제의 폭력은 세 자매에게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상처의 크기와 깊이는 결코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만 세 자매는 괜찮은 척 살아가기로 한다. 아버지의 생일잔치에 모인 세 자매의 분노가 폭발할 때까지는. 




폭력은 오래 지속된다

아버지의 폭력은 세 자매가 독자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여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까지 한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들 세 자매가 겪어야 했던 가정 폭력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웃의 무신경과 주변의 부적절한 대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내복 바람으로 집을 뛰쳐나온 미연과 미옥에게 동네 아저씨가 해준 것이라곤 쭈쭈바를 사주며,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무조건 빌어라."라고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폭력이 주는 상처보다는 가부장제의 폭력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에 붕괴될 아버지의 평판이 이웃들에게 더 걱정거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신고해 달라는 어린 자매의 호소에 이웃 아저찌들은 "니그들은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도 괜찮나?"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부장제의 폭력은 이웃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묵인 하에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그 폭력의 지속성은 아버지 대에서 끝나지 않고 희숙의 남편과 미연의 남편에게로 이어진다. 그래서 희숙의 남편은 마치 조폭처럼 암에 걸린 희숙을 찾아와 돈을 갈취하면서도 당당하게 희숙의 뱃살을 꼬집으며 비아냥거릴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연의 남편도 교회 성가대 단원과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나서도 오히려 자신이 당당하게 '차라리 욕을 해!. 지긋지긋해 당신의 위선이!"라고 미연을 욕하며 집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연이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믿음과 신뢰의 체계를 송두리째 와해시키면서.


여전히 지속되는 폭력은 피해자인 세 자매에게 다른 가해자를 통해서도 가해자지만 피해자인 자신들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그래서 폭력의 피해자인 그들도 다른 이들에게는 가해자가 된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동시에 또한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연은 기도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의 딸에게 "너 그러면 지옥 간다."는 폭언으로 폭력을 가하고, 기도를 못하는 동생 때문에 화가 나는 미연의 아들도 동생을 타박하며 동생을 때린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인 큰 언니 희숙은 남편과 딸로부터도 물리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가해를 당하지만 자신도 자기 자신을 가해하며 폭력을 내면화한다. 남들에게 피해를 입힐 만큼 모질지 못한 희숙은 그래서 장미 가시나 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며 "그래도 처음엔 시원하죠, 그렇죠?"라고 묻는다. 희숙이 자신의 신체를 자학하는 모습은 희숙의 딸에게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다가오고, 희숙은 딸은 미연의 아들에게 "뚱뚱한 게 입이나 닥쳐!"라고 언어폭력을 가한다. 셋째 미옥 역시 알코올과 공격적인 언행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자신과의 관계에서 약자인 남편에게 수시로 폭력을 가한다. 그렇게 과거의 폭력은 현재에도 오래 지속된다. 과거의 폭력은 그들에게 내면화되어 오래 남아있고 기회만 있으면 수시로 외부로 불거져 나온다.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모습으로.

   

어른들은 사과하지 못한다

마침내 아버지의 생일날 다시 모인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확인한다. 이복남매로서 첫째 희숙과 더불어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또 다른 희생자인 남동생 진섭(김성민 분)의 돌발행동으로 촉발된 '사과의 자리'에서 가족들은 자신들의 상처가 사실은 괜찮지 않았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가해자인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함을 말한다. 그러나 가해자인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있어도 피해자들은 위로하지 못한다. 난장판이 된 생일잔치에서 "아 씨발, 왜 어른들이 사과를 못해!"라고 희숙의 딸이 말하듯 어른이지만 '어른'은 아닌 아버지는 끝내 사과하지 못하며, 그리하여 자신이 어린 자녀들에게 만들어 준 상처를 끝내 치유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사과하지 못한다
이들의 삶과 서사는 계속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처음으로 삶의 마지막 국면에서 자신의 소망을 표현해 본 희숙이 바란 것은 세 자매가 함께 사진을 찍어 기억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지 같은' 이 세상에서 늘 미안해하면서도 바랐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막내 미옥은 말한다. "우린 앞으로 더 많이 찍을 거잖아." 그렇게 우리 삶은 어떤 형태의 폭력에 의해서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삶을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폭력을 고발하는 서사와 관점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그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제작자의 선언이기도 하고 그들이 이 영화를 함께 지켜보고 공감해준 관객들의 마음에 새겨 놓은  다짐이기도 하다. 마지막 엔딩에서 오늘의 세 자매는 과거의 네 남매와 그렇게 이어져있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감동을 함께 느끼며 그 '이어짐'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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