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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14. 2021

우리가 서로에게 '지옥'일지라도

직장에서의 인사예절과 인새행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기 인사이동으로 소속 부서를 옮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하자며 계장님이 주무관들을 불러 모으셨다. 이날 회의에서는 "곧 닥쳐올 선거를 맞이하여 각오를 단디 하자!"는 훈화 말씀과 함께 계장님이 강조한 전달사항은 바로 "인사[人事]를 잘 하자!"였다. 계장님 말씀의 요지는 "새로 부서원이 구성된 지 1달 여가 지났는데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올 때 인사를 잘 안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러분한테 인사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내겐 안 해도 좋지만 우리 계가 모범을 보여야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진다. 인사는 직장 예절의 기본이다."라면서. 


오랜만에 들어 본 "인사를 잘하자!"

회의가 끝난 뒤, 인사 예절에 대한 지적을 받은 우리 주무관들은 적잖이 당황하였다. 우선 초등학교 이래로 인사를 안 한다는 지적을 받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떤 주무관님은 "제가 출근 때 인사를 안 했어요?"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기도 했고, 또 다른 주무관님은 "제가 큰 소리로 인사를 안 해서 그래요."라며 숙연한 자아비판을 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으로는 '대체, 인사가 뭣이 그리 중한디? 그리고 그게 강요한다고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공무원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 인사 예절 문제로 갈등과 불편을 겪는 직원들이 꽤나 많은 듯하다. 우리 기관의 내부 자유 게시판에도 인사를 하지 않는 직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직원을 비난하는 글이 적지않게 올라오기도 한다. 심지어 계급에 따른 선별적 인사예절을 보여주는 직원에 대한 어이없음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글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보자면,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계장님이 인사하시니 잘 못 들으시던 청력도 회복되시고

보고도 못 보는 시력도 회복되시어

양손 허리에 붙이고 고객 숙여 깍듯이 인사하는 그 모습을

사람 가려 인사하는 그 모습을...."

이렇듯 게시판에 '인사' 문제에 관한 글이 적지 않을 걸 보면 '인사를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결코 생각만큼 사소한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 경험상 인사를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마치 인사를 나누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듯 인사에 능숙하다. 선거철에는 당연하고, 선거가 아닌 때에도 행사나 모임에서 얼굴을 알든 모르든 이들은 일단 인사를 건넨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행사는 주로 내, 외빈 소개와 인사말로 채워진다. 간혹 나는 이런 정치 행사에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을 나가기도 하는데.  그때 행사를 주최한 국회의원이 나를 지역주민으로 착각해 너무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해 다소 민망했던 기억도...





'인사의 달인'인 직업 정치인들 말고 일반 직장인들이나 공무원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스타일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첫째,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고 잘 받는 '엔터테이너형'이다. 이런 유형은 인사를 주고받을 때 모든 사람과 시선을 맞추며 적당한 멘트와 눈빛을 날리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두 번째 유형은 인사를 주고받는 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프리 스타일형'이다. 인사를 하면서 서로 감정의 교류를 한다기보다 출퇴근 시 통과의례의 하나로 인사를 하는 유형이다. 인사를 주고받을 때 던지는 멘트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시선을 맞추지도 않는다. 세 번째 유형은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빌런형'이다. 이른바 인사를 골라서 하고 골라서 받는 스타일을 말한다. 대게 본인보다 상급자에게는 인사도 잘하고 잘 받으면서 하급자에게는 인사를 하지도 않고 하급자가 인사를 해도 잘 받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인사의 기회비용을 따지는 따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유형은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투명인간형'이다. 최근 들어 분명 증가 추세에 있는 유형이고 '프리스타일형'이 오래 지속되면 대체로 이 '투명인간형'으로 변한다. 



직장생활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직원들에게 호감을 사고, 좋은 평판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인사 예절임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고, 사람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상대방에게 마찬가지로 호감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반려견이 인류의 '더 베스트 프렌드'가 된 가장 큰 이유도 주인의 미세한 인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댕댕이'들의 맹목적인 애정표현과 격정적인 반겨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야옹이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댕댕이의 이런 놀라운 '인사성'의 절반만 흉내내도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의 '인사 예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계장님이 우리 주무관들의 인사 방식과 태도를 문제 삼으며 주의를 환기시킨 것도 일견 유의미한 일이었다. 그 '지적'이  팩트에 부합하는가는 별도의 문제로 하더라도.

 


광장에서 만나는 타인은 어쩌면 지옥이다

'인사 잘하기'의 이런 예측 가능한 효능에도 불구하고 조직 구성원이 인사예절에 소극성을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개인의 성향 탓일 것이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인 인사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개인의 성격에 따라 혹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인사의 스타일과 표정, 눈빛과 억양은 달라질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고 그 '밀실'을 떠나 직장이나 사회라는 '광장'에 나서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도 있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자기만의 '밀실'을 나와 '광장'의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오며 처음 마주치는 '타인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깊이를 알수 없는 심연이자 수수께끼가 아니던가? 인사는 바로 그런 인간들이 '광장'에 모여 함께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의 일'이 아닌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인사 스타일이 달라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인사'란 예절 즉 매너의 문제이기에 직접적으로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인간관계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다차원의 상호의존적 관계이기에 현실계에서는 이토록 간단한 인사예절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조직 구성원이 인사를 통해 다른 구성원들과 '원활하게' 교류하지 못한다면 이는 어떤 위험의 징후이며, 위기의 징후가 아닐까? 더구나 이전엔 그토록 쾌활하고 적극적이던 구성원이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굳어졌다면 말이다. 이를 단지 개인의 성격 탓으로만 돌린다면 사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은 아닐까?




'공정'이 화두인 시대의 인사

인사예절에 있어 조직 구성원이 매우 소극적이라면 조직 내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난파된 조직 구성원이 조직에 보내는 하나의 구조 신호일 수도 있다. 만약 대다수의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 인사하기조차 싫어한다면 그 조직은 무엇보다 인사행정[人事行政] 측면에서 어떤 큰 문제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인사나 인사행정이나 모두 사람의 일이 아니던가? 평정과 승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조직의 인사행정이 대다수 조직 구성원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상대적 박탈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면 조직에 대한 개인의 충성도는 떨어진다. 구성원의 노력과 헌신이 공정한 평가에 의해 승진에 반영되지 못하고, 한 조직의 인사행정이 인사권자의 자의적인 판단과 친밀도, 정실과 무원칙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개인적은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소극적인 업무태도를 내면화할 것이다. 그 소극성은 구성원들의 인사예절에서도 드러난다.



근무평정과 승진, 보직발령 등 주요 인사행정의 과정과 결과에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승진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평가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인사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면’ 조직 구성원의 마음은 '광장'을 떠나 '밀실'로 돌아와 마음의 문을 걸어 잠을 것이다. 그 마음은 아침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의 낯빛과 말투에 고스란히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은 '공정'이 화두인 시대이다.





*이 글은 인사혁신처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mirae_saram/22243134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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