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츠뎀 May 02. 2024

조직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테오도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과 선관위의 운명



일렁이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거의 다 부서진 좁은 뗏목 위 절망과 공포, 충격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위태롭게 실려있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듯 바닷물에 반쯤 몸이 잠긴 사람도 있고, 부패한 사체처럼 검게 변색된 피부색의 사람들도 보인다. 망연자실한 채 죽은듯한 가족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있는 노인은 이미 희망을 잃었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배를 발견한 듯 손을 뻗고 옷을 벗어 구조신호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부서진 돛대를 겨우 받치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친 파도 너머  밝게 빛나는 서광 속에 지나는 작은 배는 마지막 구원의 희망일 텐데 그 크기만큼이나 작고 잘 보이지 않는다. 뗏목 곳곳에 물든 싯뻘건  핏물과 도끼는 그동안 이들에게 닥쳤던 잔인한 시련과  참상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동료들의 인육까지 먹으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이들을 절망하게 하는가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3 ~ 1824)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가로 7.1 미터 세로 4.9 미터의 압도적 크기로 루브르 박물관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리코의 이 그림은 그 크기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보는 이들을 전율에 사로잡히게 한다. 더구나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건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사실,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의 뗏목>은 1861년 7월 아프리카 서안 해상에서 침몰한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침몰 사건을 다루고 있다. <메두사호>는 프랑스 식민지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로 떠나는 군함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복구된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가 이끄는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다. 뒷돈을 받고 관직을 사고파는 일도 빈번했다. 암초에 걸려 좌초된 메두사호의 침몰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바로 이런 부패한 정부과 무능한 지도자의 무책임이 초래한 예고된 인재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도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부르봉 왕가의 정부에 뒷돈을 써서 메두사호의 선장이 된  쇼마레 선장은 승선 경험이 매우 부족했지만 왕당파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장이 됐다. 쇼마레 선장 자신도 자신이 고위직들에게 바친 뇌물을 충당하기 위해 뒷돈을 받고 사람을 더 태워 정원이 326명인 메두사호에는 400명이 넘게 탔다. 식민지 개척선이었기에 귀족부터 흑인 노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종과 계급의 사람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  메두사호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냈고, 결국 암초를 만나서 난파하게 된다. 정원보다 많은 인원을 태웠기에 구명정이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높고 고귀한 신분은 구명정 6척에 나눠 탔지만 나머지 민중들을 태울 구명정은 없었다. 


바다에 그대로 수장될 위기에 처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메두사호가 침몰하면서 생겨난 나무조각으로 길이 20m, 폭 7m짜리 대형 뗏목을 급조했다. 쇼마레 선장은 이 뗏목을 구명정으로 끌어 주기로 약속했지만 뗏목 때문에 구명정의 속도가 나지 않자 약속을 어기고 로프를 끊고 달아나 버렸다. 이제 159명이 탄 뗏목은 위태롭게 격랑에 몸을 맡겨야 했고 뗏목에 탄 사람들 사이에서는  위험한 가장자리보다 중앙 자리를 차지하려는 다툼과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다 결국 인육까지 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뗏목에 탄 사람 중 15명만 살아남았고, 지나가던 배에 가까스로 발견된 이후에도 5명이 죽으면서 결국 겨우 10명만 살았다고 한다.



<메두사의 뗏목, 491cm*716cm> 1819, 테오도어 제리코, 르부르 박물관 소장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의 뗏목>은 무능하고 부패한 프랑스 왕실이 숨기려고 애썼던 바로 이 메두사호 침몰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리코의 이 그림이 공개되자 관객들은 다시 한번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정부는 이 그림의 전시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제리코는 영국으로 이주해 이 그림의 전시를 이어갔으며 무능한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1830년 결국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 그림이 부르봉 왕가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제리코의 제자였으며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또 다른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바로 1830년 부르봉 왕가의 몰락을 초래한 7월 혁명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중심 구도 또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나타난 삼각형 피라미드 구도를 차용했다. 




우리 조직에 '리더'는 있었는가

최근, 내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고위 간부들이 지난 10여 년 간 대략 1,200여 건의 채용비리를 비롯한 각종 인사 비리를 자행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며 나는 제리코의 이 <메두사의  뗏목>이 떠올랐다. 부패한 고위 간부들이 권한을 남용해 각종 인사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자신의 친인척을 채용하고, 자신들의 자제들에게 각종 인사상의 혜택을 제공한 부조리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런  고위 간부들의 인사비리와 채용비리에 대해 우리 기관의 감사 부서는 애써 눈감았으며, 관행적으로 고위 간부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것이다. 



직급 높은 고위 간부들의 심각한 탈법과 위법, 비리에 대해서는 묵인, 동조하거나 협조하면서 하급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나 착오에 대해서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우리 인사부서, 감사부서의 파렴치한 행태가 결국 우리 조직을 '비리의 온상'으로 만든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누구나 목격하듯이 그동안 일선 현장의 힘없는 직원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신뢰의 붕괴이며 조직의 몰락이다.  고위직 간부들의  오랜 비리와 부조리, 이를 묵인 혹은 편승해 각종 인사상의 혜택을 누린 인사 부서, 감사 부서의 소위  " 그 라인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우리 조직의 몰락을 초래했다. 덕분에 아무런 잘못도 없이 묵묵히 힘든 선거를 치르며 자신의 소임을 다 해 온 일선의 하위직 직원들까지 부패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도매급으로 매도당하고 조직 전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이른바 '세자'로 불린 자신의 자제들을 특혜 채용하고 그들에게 온갖 특혜를 베푼 고위 간부님들은 이미 다 퇴임했거나 사임했고, 아무런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조직의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이 저지른 비리와 탈법에 대해서는 눈감고 외면했던 우리 기관의 감사 부서, 인사 부서야말로 지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않을까?  그들은 힘 있는 자들에겐 한 없는 '아량'을 베풀고, 힘없는 하위 직원들에게는 사소한 티끌마저 철저히 들춰내는 냉혹함과 엄정함을 보여주던 감사 갑질, 인사 전황을 저질러 오지 않았던가?  우리 조직 내부의 감사부서, 인사부서가 고위간부들의 비리에 눈감았던 이유는 그 권력자의 편에 섰을 때  주어지던 달콤한 수혜 혹은 반사이익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런 탈법과 비리, 묵인과 동조의 최종 귀결은 외부기관의 감사라는 헌법기관의 치욕이었다. 



마치 무능하고 부패한 선장의 잘못된 지휘와 항해로 침몰하고만 메두사호의 사례처럼 우리 조직은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에 의해 지휘되어왔다. 잘못된 지휘에 대해 책임져야 할 선장은 구명정으로 쉽게 탈출하고, 대다수의 하급민들만 절망 속에서 서로 싸우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메두사호의 운명처럼, 우리 조직은 지금 침몰하고 있다. 연일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 우리 조직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보도를 보고 들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 분노 속에서 나는  <메두사의 뗏목>을 뚫어지게 바라 본다. 일렁이는 파도와 만나는 저 먼 수평선에 희미하게 떠있는 작은 배가 우리의 희망일 수 있을까? 뗏목 위의 사람들을 못 본 채 지나치고 말았던 그 보급선은 사람들에게 결국 더 큰 절망과 슬픔은 아니었던가.


"분노는 현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과 구별된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매거진의 이전글 공무원들은 왜 아직도 '궁서체' 편지를 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