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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n 19. 2024

한 표의 위력?

한 표가 소중하다는 착각 _04

'당신의 소중한 한 표가 역사를 만듭니다'라며 한 표의 소중함과 위력을 말하는 사례들이 많다. 불과 한두표 차이로도 선거 결과가 뒤바뀌기 때문에 '한 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한 표의 소중함', '한 표의 위력'을 역설하기 위해,  1645년 올리버 크롬웰이 내란을 종식시키고 영국의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한 것도  1표 차이로 원로회의에서 선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1649년 청교도 혁명 당시 찰스 1세를 사형시키기로 한 것도 의회에서 1표 차이로 결정되었다고 하고, 1868년 앤드류 존슨 미대통령의 탄핵 부결도 상원에서 한표 차이로 부결되었다고 한다. 1875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의 정체를 공화국으로 할 것인가 왕정으로 할 것인가 역시 당시 국민의회에서 1표 차이로 결정되었다는 사례를 들기도 한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어로 지정된 것도, 히틀러가 독일 나치당 당수가 된 것도,  지금의 파리 에펠탑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단 1표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며 이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한 표는 소중하다. 그 소중한 한 표의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모두 똑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것을, 1표의 소중함을 역설하기 위해 든 역사적 사례들의 정확한 출처와 사실 여부도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국회와는 성격이 다른 명예혁명 당시 영국 의회나 원로원, 남북전쟁 직후 미국 상원, 프랑스혁명 시 국민의회의 사례가 과연 적절한지 묻고 싶다. 또한 이런 사례들은 특정 정책 결정에서 찬반 여부를 묻는 것일 뿐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국민주권이나 대의제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 아닐까?. 어떤 정책의 채택 여부가 1표 차이로 달라지는 것은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 흔한 일이며,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판결에서도 법관 1명 때문에 판결이 달라지는  일도 종종 있지 않던가?. 그런 위원회나 재판에서의 표결과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 구성을 위한 집합적인 주권행사로서 선거에서의 투표는 분명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우리 선거사에서도 이런 드라마틱한 1표 차 승부가 펼쳐진 일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심지어 동일한 후보자끼리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1표 차 승부가 펼쳐진 적도 있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기가 막힌 명승부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당시 충주시 의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 곽호종 후보는 한 표차로 낙선했다. 놀랍게도 4년 뒤 실시된 2006년 제4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이번에는 한 표차로 당선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우리의 한 표가 당선자를 바꾸기도 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 선거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진짜로 우리의 한 표가 ‘역사’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2018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선거역사상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경우는 지금까지 총 13번이었다. 1995년 처음 동시선거로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총 6곳(서울 종로구·서울 광진구·경기 시흥시·전북 장수군·경남 고성군·경남 함안군)에서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제2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2곳(충북 청원군, 충남 아산시), 제3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4곳(인천 부평구, 강원 원주시, 충북 충주시, 경북 의성군)이었다. 제4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다시 한번 충주시 기초의원 선거에서 '기적' 같은 1표 차 승부가 펼쳐졌다. 



2018년 실시된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청양군 의원선거에서도 처음 개표 결과 임상기 후보와 김종관 후보의 무승부였다. 이대로라면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연장자인 김종관 후보가 당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중한 결정을 위해 세 차례의 재검표가 밤새도록 진행되었고 최종 재검표 결과는 1살 차이로 연장자인 임상기 후보가 1,397표, 한 살 아래의 김종관 후보가 1,398표로 1표 차이로 승부가 갈라졌다. 그러나 다음날 임상기 후보는 이 1표 차 승부에 불복하고 선거소청을 제기한다. 그리고 선거소청에서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다시 승부는 뒤바뀐다.  


그럼 실제 선거에서 1표 차이가 아니라 0표 차이 즉, 두 후보자가 같은 득표수를 얻는 일도 일어날까? 놀랍게도 종종 발생한다. 지방선거에서 두 후보자가 동일한 득표를 기록할 경우 연장자 당선 원칙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일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과거 지방선거에서 두 후보자가 같은 득표를 얻었지만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 경우는 7차례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전남 신안군의원 선거에서 고서임 후보와 윤상옥 후보가 동일하게 379표를 받았지만 1살 연장자인 윤 후보가 당선자가 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가장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것은 1표 차이가 아니라 0표 차이이다.  


보다 최근 사례로는 2008년 6월 4일 치러진 강원도 고성군수 재‧보궐 선거가 있다. 처음 개표 결과 무소속 윤승근(53세) 후보와 황종국(71세) 후보가 나란히 4,597표를 얻었다. 후보자 측의 재검표 요구를 받아들여 일일이 투표용지를 다시 세어 본 결과 윤승근 후보 표 하나가 무효로 처리되어 1표 차이로 황종국 후보자가 결국 최종 승리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 표의 위력’이었다.  한 표 차 승부는 아니었지만 2018년 7회 지방선거 평창군수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왕기 후보는 24표 차이로 평창군수에 당선 됐다.  2위인 심재국 자유한국당 후보와는 단 24표 차이로 전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최고의 격전지로 기록되게 됐다. 득표율에서는 두 후보자의 득표율이 50.0%로 같았다. 




지방선거에서는 종종 한 표차 승부나 동점 승부가 기록되지만 아직 역대 총선이나 대선에서 이런 기록은 없다. 1표 차이 승부나 동일 득표로 인해 연장자가  당선인이 되는 경우는 주로 지방선거에서 발생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후보자가 같은 득표수를 기록했을 경우 연장자가 당선되는 규정이 적용되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후보자가 같은 득표수를 기록했을 때 연장자를 당선자로 결정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은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만 적용된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최다 득표자가 2명 이상 즉 동점자가 생기면재적의원 과반이 출석한 국회에서 표결로 최종 당선자를 결정하게 된다.





역대 국회의원선거 중 최소 표차는 ‘3표’로 2000년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광주군 선거구에서 일어났다.  당시 한나라당의 박혁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의 문학진 후보를 단 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래서 문학진 후보는 '문세표'라는 별칭을 얻었다. 문후보가 개표 결과에 불복해 재검표가 실시되었지만 표 차이만 1표 줄어, 2표 차이가 되었고, 문학진 후보의 별명만 '문두표'로 바뀌었다. 그는 4년 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하남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이외에도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충남 당진 김낙성(자민련) 후보와 박기억(열린 우리당) 후보가 9표 차 승부를 벌여 김낙성 후보가 승리했다. 2008년 18대 총선 경기 성남 수정구에서 맞붙은 신영수(한나라당), 김태년(통합민주당) 후보도 129 표차로 접전을 기록 신영수 후보가 어렵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2년 실시된 19대  총선에서는 경기 고양갑 선거구에 출마한 심상정(통합진보당) 후보가  손범규(새누리당) 후보를 17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는데 이는 19대 총선의  최소 표차 승부였다. 또, 20대 총선에서  부평갑에서  정유섭 후보와 문병호 후보가 맞붙어, 정후보는 42,271표를, 문후보는 42,245표를 득표해  단 26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득표율은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똑같이 34.2%였다. 심지어 두 후보의 승부는 마지막 투표함 한 개에서 갈렸다. 이 선거구에서만 무효표가 1,422표였으니 무효표의 향방에 따라 승부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22대 총선의 경우

2024년 4월 10일 실시된 22대 총선에서 가장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엇갈린 곳은 경남 창원진해 선거구였다.  이곳에서 국민의힘 이종욱 후보가 50.24%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황기철 후보(49.75% 득표)를 불과 0.49% p 차로 이겼다. 표 차는 497표였다. 이 밖에도 서울 마포갑에선 조정훈 국민의힘 당선자(48.3%)가 이지은 민주당 후보(47.4%)를 599표 차로, 부산 사하갑에선 이성권 국민의힘 당선자(50.4%)가 지역구 현역인 최인호 민주당 후보(49.6%)를 693표 차로, 경기 용인갑에선 부승찬 민주당 당선자(50.3%)가 고석 국민의힘 후보(49.7%)를 851표 차로 힘겹게 따돌렸다.



울산 동구에서는 민주당 김태선 후보(45.88%)가 현역 의원인 국민의힘 권명호 후보(45.20%)를 0.68% p 차로 이겨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됐다. 표 차는 568표에 불과했다. 경남 창원성산 허성무 당선자도 지역구 현역 의원인 강기윤 국민의힘 후보(45.7%)를 0.7% 포인트(982표) 차로 따돌리고 민주당(전신 포함) 후보로는 처음 창원에서 당선됐다. 공업단지가 모여 있는 창원성산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의원(17·18대),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20대) 등을 배출한 곳이지만, ‘3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 대부분 보수정당으로 넘어갔다. 이번에 허 당선자는 녹색정의당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당선됐다.


경북 경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최경환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와 접전 끝에 1.16% p 차(1,665표 차)로 고배를 마셨다. 경기 하남갑에서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친윤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이용 후보가 접전을 벌인 끝에 추 전 장관이 50.58%를 얻어 이 의원(49.41%)을 1.17% p 차(1,199표 차)로 따돌렸다. 문제적 발언으로 여야 모두 논란을 샀던 민주당 김준혁 후보와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가 맞붙어 화제가 된 경기 수원정에서는 김 후보가 50.86%, 이 후보가 49.13%를 각각 얻어 1.73% p 차(2,377표 차)로 희비가 엇갈렸다.



경기 포천가평에서는 국민의힘 김용태 후보(50.47%)가 민주당 박윤국 후보(48.36%)를 2.11% p 차(2,477표 차)로 이겼고, 충북 충주에서는 이종배 후보(51.11%)가 민주당 김경욱 후보(48.88%)를 2.23% p 차(2,632표 차)로 이기면서 4선에 성공했다.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는 민주당 박수현 후보(50.66%)가 세 번째 리턴매치 끝에 5선의 국민의힘 정진석 후보(48.42%)를 2.24% p 차(2,780표 차)로 제치며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됐다. 국민의힘 송석준 후보는 경기 이천에서 민주당 엄태준 후보와 맞붙어 2.67% p 차(3,121표 차)로 이기면서 3선 반열에 올랐다. 서울 도봉갑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김재섭 당선자(49.1%)는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후보(47.9%)를 1,098표 차이로 꺾고 신승했다. 




21대 총선의 경우

그럼 21대 총선에서는 어땠을까? 지난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을 살펴보자. 20대 총선에서 가장 적은 표차로 운명이 바뀐 지역은 어디였을까? 우선 인천 동·미추홀을 선거구는 1등과 2등의 격차가  0.2%에 불과했다. 당선자인 당시 무소속 윤상현 후보는 2위였던 남영희 후보와 171표 차이의 승부를 벌였다. 22대 총선에서도 윤상현 국민의 힘 후보가 1,025표 차 박빙 승부로 신승을 기록했다.  

21대 총선 충남 아산 갑의 경우 미래통합당 이명수 후보가 유효득표의 49.8% 얻어 당선되었는데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후보와 격차는 0.7%에 불과한 564표 차이였다. 부산 사하 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후보가 유효투표의 50.0% 얻었고 미래통합당 김척수 49.1%을 얻어 차이는 불과 0.9%였다. 두 후보는 697표로 당락이 결정되었다.  22대 총선에서는 이성권 국민의힘 후보가  43,909표를 얻어 43,216표를 얻은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두 후보자의 표차이는 불과 693표였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서울 용산 미래통합당 권영세 후보는 47.8% 얻었고, 더불어민주당 강태웅은 47.1%를 얻어 두 후보자 간 득표율 차이는 불과 0.7%를 보였으며 표차 역시 근소한 890표 차이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22대 총선에서 다시 맞붙은 두 후보자는 권영세 국민의힘 후보가 66,583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강태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60,473표를 얻었다. 두 후보의 표차이는 6,110표였다. 출구조사에서는 권영세 후보가 뒤지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결과는 반대였다.


총선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의 재검표 사례로 2022년 지방선거를 들 수 있다. 당시 경기도 안산시장 선거는 181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재검표 결과는 국민의힘 소속 이민근 시장의 승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다만 표차는 2표 줄어 당락의 바뀜 없이 179표 차가 됐다. 재검표를 요청한 민주당 소속 제종길 후보는 재검표 비용 5,000만 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지방선거이든, 국회의원선거이든 한 표차이로 승부가 갈리거나 불과 몇 백표도 안 되는 적은 표 차이로 당락이 뒤바뀐다면 이게 과연 '한 표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사례일까?  한표 혹은 적은 표 차이로도 이렇게 쉽게 당락이 뒤바뀐다면 이 한 표 혹은 적은 표 이외의 수많은 표는 과연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까?  더욱이 이 한 표와 다른 선택을 한 수많은 표는 너무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당락을 바꿀 수 있는 한 표의 위력에 놀라기 전에 그 한 표의 무게와 다른 수많은 한 표 한 표의 무게가 동일한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쉽게 한표 혹은 불과 수십 표에 의해 당락이 뒤바뀌는 소선거구제, 상대 다수대표제에서 국민주권과 대의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까? 불과 몇 표차이로 당락이 뒤바뀌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과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올바른 대의제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선거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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