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가 소중하다는 착각 _03
지난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 국힘의 지역구 투표에서 득표율 차이는 불과 5.4%였지만 의석수 비율은 161석 대 90석으로 27.96%였다. 양당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불과 5.4%인데 의석 점유율은 득표율 차이의 대략 5배 수준인 27.96%인 71석 차이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지역구 의석에서 민주당의 의석수가 국힘의 1.8배에 달한다. 이것은 작은 득표율 격차로도 큰 의석수 격차를 만들 수 있는 소선거구제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인 서울, 경기, 인천에서 민주당은 각각 52.24%, 54.67%, 53.54% 득표했지만 의석비율은 77.08%(37석), 88.33%(53석), 85.71%(12석)로 훨씬 높았다. 또 대전에서도 민주당과 국힘의 지역구 득표 비율은 54.22%:42.78% 였지만 의석비율은 7:0으로 민주당이 모든 의석을 싹쓸이했다. 대전 지역에서 국민의 힘을 지지한 유권자 중 42.78%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된 것이다. 광주, 전북, 전남에서 국힘의 득표율은 7~13%이나 의석은 역시 단 한석도 건지지 못했다.. 따라서 호남지역에서 국힘을 지지한 7%~13% 유권자들의 표도 역시 사표가 되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영남과 부산에서는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민주당과 국힘의 득표 비율은 42.04%: 53:86%였지만 의석비율은 1:17로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42%를 득표하고도 단 한석밖에 건지지 못한 것이다. 대구 경북에서도 민주당 지지표인 19.33%, 21.57%는 모두 사표가 되었다.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 현상은 사실 이번 선거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의 경우에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불과 8.4%였지만 의석수는 163:84로 거의 2배 차이가 났다. 적은 격차로도 의석이 한쪽으로 크게 쏠리는 승자독식 현상은 소선거구제와 상대 다수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선거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다. 상대방 후보보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자가 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말 그대로 '당신의 소중한 한표'가 승부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소중한 한 표'와 뜻을 같이 하지 않은 모든 표는 전부 의미 없는 사표가 된다.
사표(死票)의 일반적인 의미는 선거에서 낙선된 후보를 지지한 표를 말한다. 즉, 유효투표이지만 당선자 결정에 있어서 영향을 끼치지 못한 표를 말한다.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진 표는 유권자의 의사 표시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표, 즉 쓸모가 없는 표라는 의미에서 '죽은 표'라고 하는 것이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표는 단지 낙선된 후보자를 지지한 표뿐만 아니라, 당선자가 당선되는 필요한 표를 넘어 추가적으로 얻은 표, 그리고 당선이나 낙선에 영향을 주지 못한 무효표를 포함한다.
이렇게 한 선거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상대편보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자가 되는 상대 다수 대표제는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킨다. 선거는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이 되고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당선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최소 표 차이로 당선한 후보자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이종욱 국민의힘 후보다. 이 후보는 51,100 표(50.24%)를 얻어 50,603 표(49.25%)를 득표한 황기철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불과 497표(0.49%)를 앞섰다. 바꿔 말하면 황기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5만여 표는 모두 사표가 되었고, 이종욱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5만여 표는 이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2020년 치러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최소 표차 승부는 인천 동구 미추홀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는 윤상현 국민의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가 붙어 남후보가 171표 차이로 석패한 바 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두 후보는 다시 붙었는데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남영이 후보가 49.5%의 높은 득표율을 얻고도 또
낙선했다. 민주당 남영희 후보는 50.44%를 기록한 국민의힘 윤상현 후보에게 불과 1.05%, 1,025차로 졌다.
윤상현 후보를 지지한 5만 8천730표는 윤후보를 당선자로 만들었지만 남후보를 지지한 5만 7천705표는 아무 런 의미도 없는 사표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당신의 한 표가 소중하다'면서도 수만표, 아니 전국적으로 계산해 보면 수천만 표를 아무 의미 없는 사표로 만든다. 우리는 정말 한 표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수천만 표를 아무 의미 없는 사표로 만들면서도 '당신의 한표'를 소중히 생각한다고 말하는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