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참관기_EP.04_독일의 선거운동
소박하고 평온한 독일식 선거운동
독일 총선 현장을 둘러보면서 우리와는 많이 다른 독일의 투표소 풍경과 개표 모습에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제가 가장 놀란 점은 사실 독일의 선거운동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독일 총선 참관을 위해 저는 9월 2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입국했습니다. 총선을 나흘 앞둔 시점이었지만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우리나라였다면 흔히 볼 수 있었을 거리현수막이나 선거 유세 차량, 알록달록한 선거유니폼을 입고 거리에서 서서 인사하는 선거운동원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맛있게 먹고 마인강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갔을 때 마주친 선전벽보들을 보고 나서야 지금이 선거철이란 사실을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선거벽보도 우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후보자별 사진을 바탕으로 경력과 학력을 빼곡히 적은 모두 동일한 규격의 선거벽보는 찾아볼 수 없었고 후보자의 기호도 없는 다양한 크기의 선전 벽보가 공원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거나, 도로 교통표지판에 설치되어 있거나 거리의 광고탑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선전벽보에 게재된 내용도 우리처럼 후보자의 학력과 경력 위주가 아니라 각 정당의 주요 정책을 나타내는 간결한 선전구호뿐이었습니다. 이런 간결한 선전벽보만 가지고서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거리 곳곳을 누비며 선거유세를 하는 선거유세차량(연설대담차량)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크를 사용해서 연단에서 유세를 하기도 하고 LED 화면을 장착해 각종 동영상 홍보물이나 로고송을 틀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후보자별로 수많은 유세차량이 거리 곳곳을 누비기 때문에 과열경쟁에 휘말리면 확성기의 음량이 점점 커집니다. 유세차량이 서있는 바로 앞 상가나 아파트나 골목의 경우에는 그 소음 때문에 일반 유권자들의 생활이 너무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각 구청이나 선관위에는 이 선거유세 차량으로 인한 소음 때문에 항의 민원이 빗발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거법에는 유세차량의 소음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이를 제한할 수도 없습니다. 이를 제한하려면 선거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법 개정에 소극적입니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저는 이번에 독일 연방하원 선거 참관 기간 동안 프랑크푸르트 시내 곳곳을 다녀보았어도 우리나라와 같은 엄청난 소음을 내는 선거유세차량은 단 한대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만 선거 유세 차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독일 전역에서 선거유세차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서 저를 안내해준 프랑크푸르트 시청 선거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소음이 많이 나는 선거유세차량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집집마다 배달되는 선거공보도 없습니다.
독일의 선거운동이 또 우리나라의 선거운동과 다른 점은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거리현수막과 거리에서 줄지어 서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선거운동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거리현수막이 너무 많이 걸려 교통신호등을 가리기도 하고, 영업 중인 가게 상호를 가리기도 하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막고 있어 보행에 지장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이런 거리현수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현수막 뿐만 아니라 선거사무소에 걸려 있는 현수막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선거운동원도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사민당SPD 지역구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
실제 독일 선거운동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살펴보고 위해 이곳 프랑크푸르트 지역선거구에서 사민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올리버 슈트랑크씨의 선거운동을 취재해보기로 했습니다. 그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보니 그곳은 독일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 입구입니다. 그 슈퍼마켓 입구에 작은 파라솔을 하나 설치해 놓고 그 앞에서 전단지와 풍선 등을 나눠주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편 길에는 중고자동차에 후보자의 선전벽보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슈트랑크 씨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은 비서이자 여자 친구와 자원봉사자 1명뿐입니다. 마이크도 없고 확성장치도, 연설대담차량도, 현수막도 없습니다. 이 인포박스 앞에 서서 슈퍼마켓을 나오는 사람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뿐입니다. 사민당 후보인 그는 주로 이렇게 거리에서 당원들과 접촉을 하며 자신과 사민당의 정책을 홍보한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인터넷을 이용해서 선거운동을 하거나, 시간이 되면 집집마다 방문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는구요. 우리나라에서는 호별방문이 금지되어 있는데 독일에서는 호별방문도 허용된다고 하는군요. 슈트랑크 씨가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정책을 설명합니다. 저도 아이들이 무슨 질문을 하러 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학교 숙제 때문에 후보자의 선거공약에 대해 알기 위해 찾아왔다고 하네요.
기민당CDU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
오후에는 여당인 기민당 후보 짐머만 씨의 선거운동을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짐머만 씨의 선거운동도 오전에 보았던 슈트랑크 씨의 선거운동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전단지와 풍성, 사탕 등을 나눠주는 인포박스를 설치해놓고 찾아오는 유권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입니다. 여기서 나눠주는 선전물이나 물품은 후보자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 정당에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탕, 성냥, 풍성, 정당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등 다소 값어치가 있는 물품도 유권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나눠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경제적 가치의 크기와 상관없이 일체의 기부행위가 제한되어 있어 아무리 소액이라 하더라도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품은 유권자들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학력도, 경력도 없고 명함도 없다
독일의 다른 주요 정당 녹색당의 선거운동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앞에서 본 다른 당의 선거운동과 동일했습니다. 소박하고 평온한 독일의 선거운동을 참관하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독일의 선거운동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온 동네 아이들을 깨우는 시끄러운 로고송도 없고, 듣기 거북한 쉰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고 돌아다니는 후보자도 없고, 거리 곳곳에 위험하게 또 지저분하게 걸려있는 현수막도 없습니다. 증명사진 확대한 것처럼 담벼락에 지저분하게 붙은 선거벽보도 없습니다. 그저 정당이나 후보자의 선전 인쇄물을 나눠주고 사람들과 만나 조용히 대화화는 후보자와 정당의 정책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선거구호가 적인 선거포스터가 전부입니다.
독일의 이런 선거운동을 보다 보니 선거운동을 위한 비용은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선거운동을 위한 경비를 주로 정당이 부담하다 보니 후보자는 큰 비용 부담 없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저비용 고효율의 선거운동 제도입니다. 이런 식의 저비용 선거운동이 가능한 이유는 독일의 선거제도가 지난번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당 중심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회의 의석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정당의 득표율이고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국회 의석을 배분하니 선거는 자연히 정당 중심, 정책 중심의 선거로 치러집니다. 자신의 정당이 많은 득표를 얻어야 자신의 당선 가능성도 높아지고, 지역구에서 낙선하더라도 자기 정당의 지지율이 높으면 자신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지역구 후보자가 자기만 당선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자신의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게 됩니다.
선거운동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성
후보자별 선거벽보도 없고, 선거공보도 없고, 연설대담 차량도 없고, 선거현수막도 선거운동원도 없는 독일의 선거운동 방식의 문제점은 없을까요? 독일의 유권자들은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 것일까요? 선거와 투표에 있어서 유권자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유권자에게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운동이 필요한 것이고요. 얼핏 보면 독일의 선거운동은 유권자들에게 선거참여와 투표를 위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들여 집집마다 선거공보를 배달하고, 거리거리에 선거벽보와 선거현수막을 붙이고, 고출력의 마이크와 로고송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선거유세차량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선거운동이야말로 유권자에 대한 정보제공 측면에서 정말 탁월한 선거운동 방식이라고 자부할수 있을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독일 연방의회 선거 절차를 규율하는 독일 선거법과 우리나라의 공직선거 전반을 규율하는 공직선거법을 비교해 보며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독일연방선거법에는 선거운동에 대한 조항이 하나도 없습니다. 반면에 복잡하고 방대한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제7장 58조부터 118조에서 선거운동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명함의 크기에서 문자메시지 전송방식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정을 통해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불법선거운동을 규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독일의 경우 선거운동의 자유는 헌법상의 참정권에서 도출되는 정치적 기본권으로 제한 없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선거운동 시기부터 선거운동 방식에 이르기까지 너무 세부적인 사항들까지도 실정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선거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19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참관을 계기로 살펴본 독일의 선거제도와 투표관리, 개표관리, 선거운동 방법은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투표관리나 개표관리 업무는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무 소홀하게(?) 관리하고 있었고, 선거운동 분야 역시 제대로 된 선거법 규정 하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선출방식이나 의석 배분 방식은 어려운 수학적 계산을 사용하고 있었고, 투표용지는 그 길이가 족히 50CM가 넘는 길고 큰 것이었습니다. 일반인 중에서 선발한 자원봉자사가 투표사무원이 되어 참관인도 없이 투표사무와 개표사무를 담당하고, 선거법상 아무런 규제도 없는 선거운동 방식을 가지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의석배분 방식을 도입한 독일. 그럼에도 유럽의회 민주주의의 모범, 합의와 균형의 선진 정치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정치선진국 독일.
반면에 철저한 투표관리와 개표관리, 엄정하고 중립적인 참관인 제도, 세밀하게 규정된 선거법 규정을 가지고 규율하는 선거운동과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들여 제공하는 선거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거는 왜 여전히 불신과 의혹, 불만과 반감의 정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요? 2017년 9월 24일 독일 연방하원 선거는 기성 거대 정당들의 패배로 끝났고, 2019년 5월 우리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1여년 앞두고 있습니다. 반복이 언제나 최선은 아닐 것입니다.
독일 총선 참관기_1편
독일의 연방선거관리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