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위주 공부의 결과

by 행복한꿈

초조했다.

사실 우리 아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상위 그룹은 아니더라도 평균점수는 받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체크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보름정도의 시간동안 해내야만 했다. 만점을 받을 순 없더라도 뭐라도 할 줄 아는 아가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 아가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의식주 해결을 할 수 있는 아가였다.

안먹는 아가 답게 밥은 절대 찾지 않았지만 엄마는 때가 되면 식탁으로 데려와 밥을 먹였고, 물이 마시고 싶을 땐 정수기 앞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그마저 엄마가 보지 못할 땐 정수기 밑에 있는 선반 벽을 암벽타기 하듯이 올라가고 있으면 뒤늦게 발견한 엄마가 아무말 없이 물을 주곤 했다. 우유가 마시고 싶을 땐 우유가 보관되어 있는 선반을 열어 우유를 꺼내고 능숙하게 비닐을 뜯어 빨대를 꽂아 우유를 마시고는 빈 우유팩을 싱크대 안에 던져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까까를 먹고 싶을 땐 까까통을 꺼내어 비닐을 뜯고 까까를 먹다가 지퍼백을 잠그고 사라졌다. 자고 싶을 땐 침대방에 들어가 서성이다 보면 엄마가 잠을 재워줬고 일어나 놀고 싶을 땐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내려가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불편함 없이 살아왔기에 아가는 더더욱 입을 열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입을 열어야 했다.

정수기 앞을 서성이는 아가를 보며 물을 주기 보다는 '엄마 물 주세요'라는 말을 들어내야 했다.


"꿈이, 여기서 뭐해요?"

멀뚱멀뚱 바라만 보던 아가는 '이유'라는 말을 했다.

"이유가 뭐지?"

아가는 '이유'라는 말과 함께 '주세요'하는 손 모양을 보였다.

"물 줄까요?"

거듭 '이유'라는 말과 함께 손모양을 해내었는데 엄마가 자꾸 한 번에 물을 주지 않자 아가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유!!' 아가는 '이유'라는 말을 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오기가 생겨 '엄마, 물 주세요'라고 몇 번 외치다가 왠지 아동학대라는 생각이 들어 '이유'라는 말을 이끌어냈음에 만족하고 물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성공의 가능성을 엿본 기쁨을 남편과 나누며 다음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는 우리 아가를 불편하게 만들기. 무슨 말이든 시도라도 해야 원하는 것을 해 주기.


"눈은 어딨을까 여~기"

우리 아가는 분명히 눈코입을 안다. 틈틈이 해 본 '코코코코 눈!'놀이를 떠올려 보면 100프로의 성공률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아는 것 같기는 했다. 우리 아가가 안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크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아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노래이다. 말로는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리듬에 맞춰 '엄마가 사랑하는 000'하고 부르면 돌아보며 안기고, '사랑해요~이 한 마디 참좋은말~'하는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해 해 주곤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작전은 노래였다.

자기 전 불러주는 수많은 동요 속에 우리의 목표 언어를 끼워 넣기 시작했다.

'눈은 어딨을까 여~기'하며 아가의 눈을 가리키고 코를 가리키는 간단한 활동은 '엄마 눈은 어딨을까'의 가사에 맞춰 아가가 퀴즈의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비록 아가가 눈코입이라는 단어를 발화해 주진 않았지만 그 단어를 알고 있다는 확신을 들 수 있게 되었다. 미션 클리어!


이 무렵 나는 뜬금없이 돌무렵 보는 전집을 들였다. 아가는 두돌인데 돌잡이 전집을 들이다니.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고3때 자신이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고 느낀 내 친구는 성적이 상위권임에도 주저없이 중3 수학 문제집을 사다 풀었다. 사춘기 예민한 시절에도 3년을 거슬러 공부하는 마당에 1년 뒤진 전집이 대수일까. 식상해진 다른 책들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던 우리 아가가 요즘들어 자꾸 말을 시키며 귀찮게 하는 엄마가 읽고 있는 새로운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시금치 많~이 주세요"

"싫어 싫어, 시금치 조금 주세요"

이 전집은 대부분 이런식의 문장패턴으로 이루어져있다. '많다','적다'의 개념도 익히고 '싫다' 와 같은 자기 표현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까? 분명 목표는 '많고 적음의 양의 개념을 안다' 문항이었는데 우리 아가는 갑자기 '반짝반짝 작은별'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 안먹어~"


처음에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아가가 말을 하다니! '싫다'는 말도 하고 '안 먹는다'라는 말도 하다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밥을 반도 먹지 않았으나 꼬옥 껴안아주며 "그래 먹지마!"라고 말해 주었다. 그 벅차오름이 가신 후에는 밥먹일때마다 이 노래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지만...


보름간의 벼락치기. 당연히 성적은 높지 않았지만 안심할만한 결과는 얻었다. 우리 아가는 또래보다 9개월이 늦단다. 보통 1년정도 차이가나면 언어치료를 권한다고. 지금은 두 돌밖에 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노력하며 지켜보자는 결과를 얻으며 자만했다.

"우리 아가는 1월생이니까 10월생정도의 수준인거네! 어차피 동갑인데 뭐!"

엄마가 너무 긍정적이면 똑같은 말을 듣고도 이런 결론이 난다. 조금 더 욕심이 많고 냉정했으면 우리 아가가 천재가 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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