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육아 선배들이 늘 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초조해할 필요 없어, 기다리면 다 해!"
육아서를 읽다보면 생후 몇 개월에는 이런 행동을, 몇 개월에는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구절이 참 많이 있는데 우리아가는 도통 정석대로 행동해 주지 않았다. 항상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 유명하다는 재활의학과 선생님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우리 아가를 보내셨으니 기다리면 정말 할 줄 알았다. 그런 기다림으로 어느덧 우리 아가는 24개월 검진을 앞두게 되었다.
우리 아가는 사실 '안먹는 아가'이다. 분유때부터 먹는걸 너무 싫어해서 젖병을 들이밀면 통곡을 하며 울다가 그나마 먹어둔걸 게워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가가 깨어 있는 동안은 행복하게 놀 수 있게 냅두고 잠이 든 아가의 입에 젖병을 들이밀었다. 이른바 '꿈수'를 한 것이다. 그러던 아가가 이유식을 시작하고 집안은 전쟁터가 되었다. 밥먹는 시간 1시간에 온 집안은 이유식 범벅이 되었고 1시간동안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유식의 흔적을 닦아내고 아가를 씻기고 나면 아가가 혼자 조용히 놀다가 또 금방 낮잠시간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아가와 책을 읽거나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사치였다. 이 무렵까지 내가 아가에게 책을 가장 많이 읽어준 시기는 뒤집기 전인 100일 무렵이었다. 뒤집기와 되집기, 배밀이와 서기, 걷기... 아가가 하나 하나 기능을 탑재할 수록 나와 함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아가가 혼자 잘 논다는 핑계로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잘 키워보겠다며 영상을 보여준 적도 없으니 적막이 흐르는 공간에서 아가는 오로지 장난감 속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다리면 다 한다는 믿음 하나에 의지하다니. 참 용감했다. 이른 복직 덕분에 빨리 찾아간 어린이집 선생님도 연세때문인지 아가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만 보시는 형편이었고 아가는 더더욱 활발해 졌으나 더더욱 조용해졌다.
검진을 앞두고 받아본 문진표를 보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의 검진에서는 안먹는 아가답게 키와 몸무게가 하위 몇등인지에 대한 두려움 외에는 자신만만한 상태였는데 언어가 늦다보니 인지영역또한 측정할 수가 없었다. '말은 없지만 똑똑한 아가'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는데 상호작용 자체가 안되니 이 아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신나게 놀리다보면 관찰할 수 있는 대근육, 소근육 활동은 만점에 육박했다.
제자리에서 양발을 모아 깡총/ 계단의 가장 낮은 층에서 두 발을 모아 바닥으로 뛰어내리기/난간을 붙잡지 않고 한계단에 양발을 모으고 한발씩 계단을 올라가기/ 블록을 4개 쌓기/문손잡이 돌려서 열기/신발끈이나 구슬 구멍에 끈을 끼운 후 빼내기 등.
혼자 옷입고 신발신고 문열고 밖에 나가버리는 24개월 능력자 아가에게 이런 일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언어와 인지 점수는 처참했다.
<인지영역>
그림책에 나온 그림과 같은 실제 사물 찾기- 그림책을 봐 줄 생각이 없어 측정 불가
동물 그림과 동물 소리 연결-엄마가 '멍멍'하면 휙 하고 가버림
지시에 따라 신체부위 5개 이상 가리키기-눈 어딨지? 베시시 웃으며 가기
2개의 물건 중 큰 것과 작은 것 구분-이거랑 이거랑 뭐가 더 커? 두 개 다 던져버리기 등등
<언어영역>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사물의 이름 말하기-엄마도 못하는데 사물의 이름을?
'안에, 위에, 밑에, 뒤에 중 2가지 이상 이해'-아무것도...
어른이 시키면 미안해 고마워 라는 말을 한다-엄마도 못하는데...
0점으로 제출할 수는 없는지라 영유아 검진 전에 이를테면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보름남짓. 해내야만 했다. 벼락치기를 위해 기출문제만 풀고 합격했다는 신화를 영유아 검진에서 이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