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어의 출현

by 행복한꿈

아가 친구 중에 어른못지 않게 말을 잘 하는 아가가 있다. 돌 전후 폭발적으로 어휘량이 증가하는 것 같더니 18개월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를 보고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라고 외치며 뛰어다녀 깜짝 놀랐던 기억이다. 그 당시 우리 아가는 엄마 아빠만 해 줘도 감사한 수준이었으니 우리 아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이미 넘사벽이라는 생각도 강했다. 그 아가가 돌 전후 가장 많이 썼던 말은 '아니야'와 '싫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똑똑하고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아가라 '아니야'와 '싫어'를 외치며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모습 또한 신기하고 부럽게 느껴졌는데 우리 아가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니야'나 '싫어'와 같은 말은 입에도 담지 않았다.


우리 아가가 처음 썼던 부정표현은 '안먹어'였다. 밥먹기 싫은데 자꾸 입앞에 수저를 들이대는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는지 '으음으음'수준의 표현을 하던 우리 아가가 단호하게 '안먹어'라고 외쳤을 땐 기특하고 놀랍기도 했다만, 한 번 트인 입에 재미가 있었는지 '싫어 싫어 안먹어~'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마저 몇 달 지난 지금은 추억이군. 둘째가 워낙 안먹어서.


어쨌든 우리 아가는 '안 먹어'라는 말을 한 다음에는 '아니야'라는 말을 이용하여 부정표현을 했는데 그 당시에 내가 적어놓은 기록에 의하면

'꿈이야, 잠 잘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나에게 '꿈이 쿨쿨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아기띠해줄까?'라는 말에 '아기띠 아니야. 동생 아기띠!'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 때가 우리 아가 38개월이다. 그리고 지금은 40개월. 나는 지금도 가끔 아가를 아기때에 재운다. 13키로도 되지 않아 가벼운 편에 속하긴 하지만, 아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보다 무려 2개월 젊었던 과거의 나는 이 모습에 '문장으로 말하는 기특한 아기'라는 메모를 적어 놓았다. 세상에, 너무 엄마엄마하다.


아무튼,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부정표현을 보며 아기가 의사표현의 의지를 보인다고 판단하여 그 다음엔 한동안 '모르는척하기'전략을 펼쳤다. 장난감 수납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은 자동차를 꺼내고 싶어하는 아기를 보며 분명 '빨간 자동차'를 꺼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노란 자동차'를 꺼내며 '이거?'라고 말을 하면 '아니야'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만약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다면 '노란 자동차 아니야?'라고 하며 말을 유도하기도 했다. 엄마가 바로 빨간 자동차를 꺼내주었던 것이 오래 전의 나의 모습이었다면 어떻게든 말을 걸고 이어나가려는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덕분인지 아가도 '음소거'기능을 없애고 시끌벅적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가들이 나타내는 부정의 의미기능에 대해 학자들이 분류한 자료를 찾아보면 '없네'와 같은 존재의 부정, 거부하기, 부인하기, 금지하기와 같이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부정의 발달과정은 옹알이 수준부터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나는 이러한 자료를 찾을 때마다 우리 아가의 돌 이전-나는 왜 수다스럽지 못했나에 대해 후회하곤한다.

옹알이가 이루어지는 언어이전에는 도리도리나 소리지르기(옹알이)로 아가는 '거부하기'를 나타내는데 우리 둘째가 지금 딱 그 시기인 것 같다. 이유식을 들이댈 때 도리도리 하며 피하거나, 소리치거나 울거나 등. 존재의 부정은 놀다가 누군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는 등의 표현인데 우리 둘째는 엄마가 화장실 속으로 사라지며 문을 닫을 때 그렇게 세상 잃은 듯이 운다. 첫째는 그런 모습이 없었기에 그저 순한 아가인 줄 알았다. 무언가를 하려는 것을 어른이 방해했을 때 불만을 표현하는 실패하기. 방해자가 어른에 국한되지만은 않는게, 첫째와 둘째가 놀 때 같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첫째가 둘째의 장난감을 가져가고, 둘째는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모습으로 표현을 한다. 이 또한 첫째가 순한줄 알고 넘어갔던 부분이다. 쿨하게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곤 했으니까. 코를 닦아주려할 때 찌푸리며 격렬하게 표현하는 금지하기, 사실 이 자료를 정리했던 것은 올 봄정도였는데 그 당시에는 첫째에게서 잘 못 보던 모습이었어서 와닿지 않았는데 우리 둘째의 모습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이라 '이거구나'라는 느낌과 '첫째가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세탁기 소리나 낯선 자극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 우리 아가 둘다 두려움이라는게 별로 없지만 뜬금없이 로봇청소기가 출동했을 때 놀라는 모습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단일언어 시기, 즉 문장 전에 나타나는 부정표현 역시 존재의 부정, 거부하기, 부인하기, 금지하기로 나눌 수 있다. '할머니 없~다'와 같은 것이 존재의 부정, '내꺼야'라고 말하거나 '안해'라고 말하는 것이 거부하기(19개월정도에 처음나타난다는 이 표현이 우리 아가는 30개월정도에 어렴풋이 시작됐고 적극적으로는 세돌무렵이었으니 참 많이도 늦었다.) '에이씨'와 같은 감정표현에서 '못-'로 발화한다는 못함. 울 아가로 치면 '아 진짜'와 같은 걸까? '못-'은 아직도 크게 나타나진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너무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해 주어서 그런걸까. 우는 활동에서 '무섭다'라는 말로 이어지는 두려움의 표현. 우리 아가는 혼자 자기 시작하면서 '무섭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40개월 무렵부터는 영어노래 'if you're happy'를 들으며 가사에 'scared'가 나오면 잔뜩 겁먹은 표정과 몸짓으로 '무서워'라고 말하기도 한다. 두 단어 조합 이전 나타난다는 부인하기는 '아기띠 아니야'와 같은 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마'라는 식의 금지하기는 만2세이후에 나타난다고 하나, 우리 아가는 37개월정도부터 '하지마'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조금 시들어졌다.

문장으로의 부정표현은 '안해'와 같은 말로 거부하기, '코 자자'-'안자'와 같은 패턴이겠지. 세 단어 이상을 말하면서 부정어-행동의 주체가 '아니야, 할머니 가'와 같이 나타난다는 금지하기. 아가를 재울 때 뜬금없이 '아니야, 엄마 가'라고 말하는 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일까? 마지막으로 이 시기의 존재의 부정은 '까까없네'와 같은 표현인데 따지고보면 아가가 세 돌 전부터 사용하던 '엄마없네'와 같은 말도 문장으로부터의 부정표현이었던 셈이다.


부정표현에 대해 정리하며 나는 또한번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우리 아가가 영영 말을 안 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이 활동과-'안먹어라며 노래를 해'하며 설렜던 그 순간, 그리고 지난 기록을 보며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우리 아가의 언어능력에, 엄마의 노력에 꾸준히 응답해주는 우리 아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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