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우리 아가는 무발화 아동이었다. 대게 말을 하지 않는 아동, 말이 트이지 않은 아동을 '무발화 아동'이라 칭하는데 우리 아가는 그 무발화 기간이 너무나도 길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 무발화 기간에 끊임없이 자극을 줬어야 하는데 아가에게 말을 걸다가도 대답이나 행동이 돌아오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줘버린게 아가의 침묵이 장기화된 원인인 것 같다. 우리 아가는 무발화아동에 딱 들어맞는 아가는 사실 아니다. 그래서 내가 더 안일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이 기나긴 시간동안 '언젠가는 말 하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월령대의 앞자리가 3으로 변하면서부터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를 수다쟁이로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활동을 했고 효과를 본 여러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 중 말이 아예 트이지 않았던 시기에 말문을 여는데 효과적이었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엄마'해봐 라고 말해도 '엄마'라고 절대 따라해주지 않던 우리 아가가 재미삼아 혼자 말을 한다고 판단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에취'이다. 둘째 출산이 임박했을 무렵 보여주던 영상에서 '클리니'라는 캐릭터가 강물에 빠져서 '포스티'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안전하게 구조되는 장면이 있었다. 클리니는 구조 직후 '에취'하는 귀여운 기침 소리를 내는데 아가는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그 영상을 볼 때마다 클리니보다 한발 앞서 '에취'라고 흉내를 냈다. 그 시기, 영상을 보여주면서 영상을 보여주는 상황을 열심히 합리화 하면서도 '영상때문에 아가가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는데 그런 불안한 마음도 아가의 '에취'하는 소리에 녹아내렸던 기억이다.
아가는 왜 하필 에취에 빠졌을까?
그 발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아가의 에취에 녹아버린 엄마아빠는 툭하면 아가 앞에서 '에취'라며 애교를 떨어보였고 아가도 에취 하며 응답해 주었다. 쉽고 재미있는 소리를 따라하며 말을 트여보면 어떨까 싶어 옹알이단계의 아가를 대하듯 온갖 의성어, 의태어를 들이대보았다. 이 당시 아기들이 보는 의성어 동시집을 구입했는데 함께 책을 읽는 것은 아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대신 엄마가 책을 여러번 읽어보며 의성어,의태어를 몸에 익혀보았다.
자동차 놀이를 할 때에는 '바퀴가 데굴데굴'굴러갔다는 표현을, 어린이집에 갈 때는 '씽씽 킥보드를 타고 가자'는 표현을, 색칠놀이를 할 때는 알록달록 여러가지 색깔로 칠해보자는 표현을, 비타민을 먹을 땐 '새콤달콤한 맛'이라는 표현을 하며 아가가 말 자체에 더 집중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이 하루아침에 결실을 맺진 못한다. 이 시기의 아가는 아직 '데굴데굴, 씽씽, 알록달록, 새콤달콤'이라는 발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그 단어를 주변에서 알아주고 놀라워했을때 아가의 언어 자존감은 더 높아지고, 완벽하지않아도됨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가는 요즘도 그냥 별을 가리키지 않고 '반짝반짝 별'을 가리키고, 세모는 언제나 뾰족뾰족 세모, 네모는 언제나 반듯반듯 네모라고 표현한다.
오늘은 아빠와 아가가 비행기를 조립하는데 아가가 갖고 놀던 아주 작은 비행기바퀴 하나가 사라져서 비행기가 완성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꿈이야, 비행기 바퀴 어디갔어?"
"저~기 데굴데굴 굴러갔어."
아가와 의사소통을 하게되다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다니! 아가의 말대로 바퀴는 쇼파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있었다. 아직 미숙한 '굴러가다'의 발음이 '데굴데굴'을 만나지 못했다면 엄마 아빠는 '궈써'에 더 가까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바퀴는 쇼파밑에서 오랜시간 방황했을텐데 아가의 꾸밈말 덕분에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무발화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단순하게도 아가가 어떤 말이든 자발화를 하는 순간 판명난다. 물론 시도때도 없이 '에취'를 하여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했던 부분은 자발화와 크게 관련있다 할 수 없지만 이로인해 어떤 말이든 자기가 표현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으니 어떤 말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내뱉고 인정받고 확장시켜나가다 자발화의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에서 우리 아가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이렇게 아가가 무언가를 표현하고자할 때 주변 사람들이 전혀 호응을 해주지 않거나 심지어 '무슨말이야?'하는 식의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면, 특히 그것이 어린이집 친구들이나 선생님이라면 아가의 무발화기간이 더 길어지고 학교 입학 후 학습과도 연관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근무중에 만났던 학생 중 '선택적 함구증'과 유사하게 유치원까지는 말을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 후 전혀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비슷한 상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꿈이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있어서 엄마아빠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천지지만 열심히 통번역해가며 최고의 수다쟁이로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