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뭐야?

by 행복한꿈

자기가 말을 좀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기가 34개월 무렵부터는 '이거 뭐야?'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기 시작했다. 만 1-2세의 아기들이 주로 '이거 뭐야?'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니 이 무렵까지도 아가는 쭈욱 9개월정도 차이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시도때도 없이 '이거 뭐야?'라고 물어보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둘째와 함께인데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더 많은 세상을 구경시켜주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운 일이다. '이거 뭐야'라고 외치는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게 되며 단어 결합도 가능해지고 어휘량도 폭발적으로 늘어 50-100개정도의 명사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 아무리 많아도 50개가 안 되는 명사를 습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신 이 시기의 나는 아가의 '이거 뭐야'를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열심히 대답해 주었으며 따라해보게 시키기도 했다.

아가는 주로 경찰차, 소방차, 버스와 같은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사물에 대고 '이거 뭐야'를 외쳤는데 사실 아가는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확인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처음에는 주로 대답을 듣기만 하던 아가가 어떤 날은 '아니야, 견찬차'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이 가리킨 사물이 '버스'인데 엄마가 잘못보고 그 옆에 있는 '은색 자동차'를 지목하면 '버스!'라고 외치며 나를 가르치려 들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단순히 대답만 해주다가, 따라해보게 하다가, '뭐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되물어도 보다가, '가르쳐줘'라고 말하기도 하고 '버스, 버스에 사람들이 타고 있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엄마의 음성과 크기를 따라하고, 억양과 음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아기의 질문을 귀찮아 하거나 쌀쌀맞은 말투로 되받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내가 그 시기에 100% 아기의 말에 친절한 응답을 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고 가르쳐주고자 한 것도, 말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성격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아기는 엄마의 이런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았을까? 내가 부족하진 않았을런지 걱정이 되긴 한다.


이 시기에는 이사를 와서 단지내 어린이집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바로 옆 단지 어린이집으로 등하원을 하는 기간이었다. 등원시간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 더 먼 곳의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노란버스가 쉴새 없이 들어왔는데 아기 역시 쉴새없이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거뭐야?'를 외쳤다. 하루는 노란버스라고 하고, 하루는 유치원버스라고 하고, 하루는 노란버스라고 하다가 통일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노란버스'라고 명명했다. 그러고는 '노란버스가 친구들을 태워간다.','노란버스 타고 싶어요?','노란버스는 어린이집에 가는 버스야.' 이런식으로 낱말의 수를 증가시켰는데 어느날 창가에 앉아있던 우리 아가가 저 멀리 보이는 노란버스를 보고 '노란버스 타고 싶어요. 같이 놀자'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하는 반가움과 동시에 어린이집을 옮기고 싶은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자동차 모양의 동화책을 구입했다. 아가가 차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주로 장난감을 사 주었는데 차 모양으로 된 동화책을 읽혀보니 하루 종일도 읽을 기세라 전집을 구입했다. 소방차, 경찰차, 청소차, 이삿짐차 등 다양한 차 모양의 책들이 있었는데 처음엔 멋있는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에만 관심이 있어서 다른 책을 읽어줄땐 자기 할 일 바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만 괜히 입아프게 떠들고 있군'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눈은 다른 곳에 있어도 귀는 분명히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들이 몇 번 있었다.

노란버스 책 내용 중에는 '버스에 타면 안전벨트를 해요. 친구와 큰 소리로 떠들면 안돼요.'라는 내용이 있는데 주말에 아가와 함께 자동차로 이용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카시트에서 폭풍 옹알이를 시작하자, '쉿, 떠들면 안돼'라고 말하며(매우 부정확했지만 엄마아빠 귀에는 분명 그렇게 들렸다.) 노란버스 책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다른 어느날, 남편과 함께 얼마 후에 있을 제주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항버스'책을 갖고 와서는 '한라봉'이라는 말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그 책 내용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는데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그런데 사실 그 단어가 정말 한라봉이었는지 40개월 현재 조금 의심스럽긴 하다. 지금은 한라봉을 보고 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아가들은 아는 단어 수는 많지 않지만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낱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상적인 속도로 언어가 발달하고 있는 경우에는 실물자료 없이 '우리 지난번에 비행기 탔지?'라고 말을 해도 '비행기'라는 사물의 이해에 무리가 없지만 다소 늦은 속도인 아가들은 책이나 그림, 실물을 보며 '비행기'를 가르쳐야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물 자료 없이 갑자기 공항버스 책을 갖고 온 우리 아가가 어떤 속도인지 규정하기가 애매하다는 점이 내가 우리 아가를 혼자힘으로 끼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어느 포인트에서 흡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하루 온종일 쫑알대줘야 하니 맥이 빠질 때도 많지만 분명한 건 우리 아가는 하루 하루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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