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아빠와 공놀이 하는 에피소드를 기록한 바 있는데 엄마와 단둘이 아기자기한 만남은 가진 것 또한 아기가 너무 좋아했고 의미있었기에 소개하려 한다. 아기와 오붓한 시간을 마련하게 된 이유는 단지 미안함이었다. 당사자와 합의도 하지 않은 채 어느날 갑자기 뱃속에 동생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더니 엄마는 동생때문에 몸이 불편해서 놀아주기 힘들다고 파업도 선언하고 갑자기 2주간 집에 들어오지 않더니 처음 보는 아가를 데려와서는 동생이라고 사랑해주라하니 이 아기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와중에 신기해서 만져보려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달려와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아가가 아야 한다며 예쁘다 예쁘다 하라질않나 한참 자기랑 놀아줘야 할 시간에 갑자기 아기 재운다며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엄마랑 놀고싶어서 주변을 돌아다녔을뿐인데 아기 재우는데 방해한다고 혼이나 내고. 아무튼 미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그동안 체력이 안 돼서 외면한채 벌써 둘째는 돌이 다 되어간다. 1~2시간만 보내며 숨좀 쉬려던 어린이집을 여관방처럼 생각하며 낮잠을 4시간이나 자버리는 둘째 덕분에 낮에 강제로 휴식시간이 생겨버린지 오래인데 이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첫째를 좀 더 챙겨줘야겠다 싶다.
우리 집은 새벽 4-5시정도에 두 아가가 모두 깨고, 저녁 7-8시정도에 두 아가가 모두 잔다. 잠도 같은 시간에 자고, 밥도 같은 시간에 먹는 덕분에 한순간 몰아치면 어떻게든 상황이 정리되긴 하는데 그 몰아치는 시간에 결국 내 체력은 바닥이 나고 아가들에게 안 좋은 기운을 풍겨버리곤 한다. 문제는 그 안 좋은 기운이 오롯이 첫째에게 가는 경우가 자꾸만 늘어 단둘이 행복한 시간을 좀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날이 커져만 갔고 어린이집에 과감히 주1회 첫째 3시 하원, 둘째 5시하원의 날을 갖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오늘이 바로 그 첫 날!
아침에 아가들을 등원시키며 첫째와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데 '그냥 더우니까 머리나 깎으러 가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리 설렜는지. 그와중에 아가 말 늘리겠다고 '더워서 머리를 짧게 깎을거야'라는 것을 목표언어로 삼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미용실에 예약전화를 걸었다. 세상에, 오늘 화요일이라 정기휴무라네.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있는 남성전용컷트전문점에 아가 머리를 깎아줄 수 있는지 문의를 하고, 하원시간이 되어 아가를 찾으러 갔다. 항상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도, 일찍 데리러 가면 더 들떠서 나오는 우리 아가를 보며
"오늘 엄마랑 머리도 깎고 재미있게 놀거야."
라고 말하니
"그래그래"
라고 외치며 킥보드에 올라탔다. 어린이집이 단지 안에 있어서 주중에 걸어서 함께 도로로 나간 일이 손에 꼽히는데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 하나하나에 아가는 한마디씩 덧붙였다.
"노란버스가 세 대 가요."
"꿈이 노란버스 타고 다니는 어린이집 가고 싶어요?"
"네"
"그럼 내일부터 노란버스 타는 어린이집 갈까요? 2층 어린이집 안 가요?"
"안돼. 2층 어린이집 가."
"헬리콥터 2대 날아가요."
이 뒤에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한참 불렀다. '헬리콥터가 날아가요'뭐 이런식이었는데 왠지 아가가 흥에 넘쳐 지은것만같은 가사와 멜로디였다.
의지가 불타오르던 초반에는 '바람이 솔솔 불어서 시원해요.','킥보드를 타고 엄마랑 놀러가요.','머리를 짧게 깎을거예요.'라는 식의 말을 해 주며 걸어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미용실에 도착할즈음에는 다시 과묵한 엄마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먼저 온 손님이 계셔서 아가와 대기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잡고 쫑알이 모드로 변신하여
"엄마랑 손잡고 킥보드 타고 왔지요?"
"머리를 짧게 깎을 거예요."
라는 말을 하는데 아가는 따라해주지 않았다. 뭐, 이제는 따라하지 않아도 다 입력하고 있다는 믿음이 너와 나 사이에 생겼단다. 조급해하지 않을게. 어느새 차례가 되었고, 아가는 군인아저씨가 되었다. 분명 어린이집을 나설때만해도 행복한 표정이었는데 왠지 슬프고 억울해 보여 괜히 '꿈이가 머리를 짧게 깎았네,','우리 꿈이 머리가 정말 귀엽구나. 역시 최고!'라는 말을 외쳐보았다. 계속 보니 정말 귀여운 것도 같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아가가 직접 케잌을 골라보게 하였더니 아가는 치즈케이크를 골랐다.
"꿈이가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구나. 엄마도 치즈케이크를 정말 좋아해요."
아가와 단둘이 분위기있게 딸기주스 한잔에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약 5분 행복했다가 큰 소리로 다섯손가락 노래를 부르는 아가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집념의 엄마가 되어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다 못 먹고 가다니 너무 슬퍼요.'와 같은 절절한 멘트를 하면서.
사실 오늘의 가장 큰 성과는 아가의 정서적 안정이다. 별 것 없는 외출이었지만 아가는 엄마와 단둘이 무언가 하는 경험이 즐거웠는지 자기 전에 갑자기 '엄마 해피해피'라고 말하기도 하고 '엄마랑 꿈이랑 손잡고'라는 말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 굉장히 긴 웅얼거림을 보이기도 했다.
다람쥐형, 그리고 자조가 높은 우리 아가의 언어를 빨리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엄마와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언어와 정서를 모두 챙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 '정서' 속에는 엄마의 정서 또한 포함되어 있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정말 '해피해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