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베이터놀이

by 행복한꿈

우리 아가가 언어 말고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그 중 하나가 혼잣말로 속삭이며 엘레베이터 놀이를 할 때이다.

자동차를 갖고 놀다가도, 책을 쌓아놓고 놀다가도, 그냥 멍을 때리고 있다가도 혼자 '무이다치타, 1층, 치소'하고 말할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더니 요즘은 조금 더 정확한 발음으로 저 놀이를 지속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 아가는 말은 안 트이면서 노래는 즐겨 했고, 숫자는 읽을 줄 알았다. 1-10까지 읽을 줄 알던 것이 이제는 두자리수는 거진 다 읽을 수 있는데 처음 1-10까지 읽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모임에 아가를 데려갔더니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하나~열까지 손가락까지 펼쳐가며 외쳐서 나 혼자만 뿌듯했었다. 나 혼자만 뿌듯했던 이유는 아직 아기가 없거나 결혼도 하지 않았거나, 말을 아주 잘 하는 딸이 있는 친구가 있는 모임이었는데 우리 아가의 숫자세기 실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발음이 엄마 귀에만 정확하게 들렸는지 다들 두눈 가득 물음표를 그린 채 '응?'하는 표정을 보여서 '숫자 셌잖아!'라고 내가 말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말로서 어른들의 관심을 받은게 숫자여서인지 몰라도 아가는 숫자를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엘레베이터와 지하주차장은 아가에게 너무 즐거운 공간이다. 주차장 기둥마다 쓰여 있는 숫자들을 읽으며 걸어가는게 재미있는지 가까이있건 멀리있건 숫자를 큰 소리로 외치는데 문제는 모든 숫자에 '층'을 붙인다는 것이다. 처음 숫자를 접한 곳이 엘레베이터여서인지, 아니면 엘레베이터에서 나오는 음성이 '2층입니다.'라고 말해주어서인지 자꾸만 주차장의 모든 숫자에 '층'을 붙이는데 옆에서 층을 빼고 다시 말해 주어도 쉽게 고쳐지진 않는다. 특이한건 전자레인지의 숫자나 자동차 번호판 등 다른 숫자를 읽을 땐 또 '층'이 없다. 어떤 기준으로 층이 생기고 없어지는지는 더 지켜봐야할 일이지만 단위를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 요즘은 의도적으로 아가 앞에서 숫자를 세어보거나 읽고 있다.


"꽃이 피어있네. 꽃이 몇 송이 있는지 세어볼까? 한송이, 두 송이..."

"양말이 있네. 양말이 모두 몇 켤레인지 볼까? 한 켤레, 두 켤레..."

"엘레베이터에 사람이 많이 있네. 모두 몇 명이 있지? 한 명, 두 명..."


사물을 셀 때 쓰는 단위의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40개월인 우리 아가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말이 트인 시기가 늦어서인지 만1-2세에 나타나야 할 이해/표현 언어가 아직 없을 때도 있는 반면 뜬금없이 이렇게 나중에 나타나도 되는 언어들이 나타나보이기도 한다. 단위 자체는 아직 나타났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게 그대로 고착화되어 나중에 고치기 어려울바엔 지금 함께 다뤄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한 명, 두 명','한 개, 두 개'같은 것은 이미 스스로 하고 있는 단위들이니 이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단위의 이해는 만4-5세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가가 혼잣말을 하며 노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인데 아가는 이 혼잣말을 통해 또다른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창의성을 발현하기도 한다.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혼잣말을 통해 아가가 언어적으로 어떤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 오류를 잘 기억하고 있다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정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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