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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꿈 Dec 30. 2019

아들은 원래 그렇다.

오고 말았다. 어린이집 방학이.

방학안내가 나온 가정통신문을 받자마자 나는 영유아검진예약을 했다. 5일의 방학 중 앞 뒤 하루씩은 두 아가의 영유아 검진을 하기로 한 것. 그리고 어젯밤에는 조금이라도 아가를 늦게까지 재우기 위해, 굳이 아가들을 일찍 재우려 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진빼다가 화내고 싶지 않으므로. 그래봤자 아가들은 7시쯤 잠들었고 오늘도 5시에 눈을 떴다. 

어쨌든 아가들은 오늘도 5시부터 부산스럽게 놀아댔다. 10시에 병원예약이 있으니 앞으로 4시간만 놀다가 외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둥글둥글 엄마가 되어 아가들의 장단을 맞춰주며 놀다가 아침을 줬는데 그 때 1차 분노. 두 아들이 요즘 또 안먹어 기간에 돌입해서 큰 안먹어는 입에 물고 있고 작은 안먹어는 죄다 뱉어놓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나름대로 조절을 하고, 적당히 먹인 후에 아가들과 신나게 놀고 난 후 병원에 갔다. 너무 신나게 논 것일까. 두 아가 모두 누가봐도 졸린 얼굴로 병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아가들은 졸리면 텐션이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서 정말 얼굴을 들 수 없게끔 난리도 아니었다. 미리 예약해둔 덕분에 50여명까지 있는 대기 순번 중 우리 차례는 두번째. 그런데 그 한 명을 기다리며 난 내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말았다. 두 아들은 양방향으로 흩어져서 나는 가운데서 이 애를 막을지 저 애를 막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영유아검진 특성상 의사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니 진료실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 평소에 이정도까진 아닌데... 차타면 1분 이내에 잠들 각이구나. 애가 너무 난리를 치니 의사선생님께 속삭였다.


"선생님, 혹시 얘 좀 이상한건 아니죠? 놀이치료같은거라도 받아야 할까요?"


의사선생님은 너무 다정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전혀 이상하지 않고요. 모든 남자아이들이 이래요."


내 주변 대부분의 아이들은 얌전한데 가끔 비춰지는 '괜찮은' 모습들이 우연히 노출된 것일까? 어쨌든 '이상하지 않다'하시니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두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1. 안먹어들에게 점심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2. 낮잠을 어떻게 재울것인가?


안먹어들은 졸리면 도통 밥을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지도 않는다. 배고픈데 안 자고, 피곤하니 짜증내는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5시쯤 공복이나 다름없는 배를 붙잡고 밤잠을 시작하는데 배고프니 자다가 계속 깨버린다. 아기들을 카시트에 태워 두어바퀴 돌며 재워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양육자 하나에 자는 아기 둘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 같아서, 잠들면 두시간 정도 주차장에 앉아 기다려야 할 것이므로 일단 집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주문을 외우며.


"꿈이야, 우리 집에가서 뭐할까?"

"자동차 많이 갖고 놀아요."

"아니! 밥먹고 쿨쿨 자다가 엄마랑 자동차 갖고 놀거야."

"밥? 새우볶음밥?"

"새우볶음밥 먹고싶어요? 그래 좋아. 새우볶음밥 먹고 쿨쿨 자다가 엄마랑 자동차 갖고 놀자."

"그래 좋아. 쿨쿨 자다가 엄마랑 놀자."


집에 오는 내내 단 하나의 계획만 세뇌시킨 채 바로 손을 씻기고 밥을 차렸다. 아기들이 자동차로 한눈팔 것에 대비해 모두 화장실에 들여보낸 후 꿈이에게 책임을 부여했다.


"꿈이야. 소매를 걷고 비누를 짜서 손을 문질문질 해요. 그리고나서 행복이도 도와주세요."

"그래 좋아!"


아기들끼리 손씻기는 금방 끝날 일은 아니기때문에 급히 밥 준비를 하고 또 급히 아기들을 의자에 앉히고 물한모금 먹이고 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얌얌얌얌, 응? 왜 안먹어요? 오늘 밥먹고 쿨쿨 자고 엄마랑 놀기로 했지요? 꿈이는 약속을 지키는 어린이지요?"


뭔가에 홀린 듯 아기들은 밥을 먹었고, 정리를 했고, 이제 잘 일만 남았다.


"쿨쿨 잘 사람!"


뭔가 굉장한 일을 할 것처럼 큰 소리로 잘 사람을 모집했고 아가들은 얼떨결에 침대로 들어갔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아가들을 토닥이다보니 5분도 되지 않아 모두 잠들어버렸다. 자장가랍시고 부른 노래는 근본없는 멜로디에 근본없는 가사.


'누가 먼저 잘까? 대결해보자. 멋있는 꿈이, 귀여운 행복이. 어떤 아가 먼저 자서 예쁜꿈꿀까. 누가누가 먼저 잘지 대결해보자.'


요즘 나는 아들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마음수양을 하고 있다. 우리 아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음과 동시에 아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나 할까. 바로 어제 읽은 챕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른이 약간의 상상력만 가미하면 하기 싫고 재미없는 일도 흥분되는 도전적인 일이 된다.
이는 지루하면 종종 직접 재미있는 놀잇거리를 만들어 낸다. 어떤 아이는 또래 친구나 부모에게 싸움을 걸기도 하는데 그건 일종의 도전으로 먼저 싸움을 걸고 이기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는 아이가 다툼을 포기하게 만들고 더 재미있는 일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러고보니 아가들은 유난히 스토리가 있는 상황을 더 즐기고 온순해 진다. 신속히 장난감 정리를 하기 위해 금도끼은동끼 속 산신령이 되어 '이 자동차가 네 장난감이냐. 어서 바구니에 담아 두거라.'하고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하며 장난감 정리를 끝내버리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날이 있으면 '오늘 어린이집에서 블럭 쌓고 논대! 우와. 재미있겠다. 친구들이 벌서 블록을 쌓고 있으면 어쩌지? 얼른 가서 블록을 쌓아야겠다!'하면 큰 일이라도 난 것 처럼 준비해서 등원을 하곤 한다. 아가들 키우려면 눈높이를 딱 낮춰줘야 하는게 진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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