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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_ 다시금 달려 나가기 위한 쉼표

내일의 발걸음을 단단하게 하는 오늘의 멈춤

by Evanesce

Relaxation [ riːlækˈseɪʃn ]

1. (즐거운 일을 하면서 취하는) 휴식

2. 휴식 삼아하는 일

3. 완화



마음이 먼저 지쳐버리는 순간들은 우리의 예측과는 다르게 찾아온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마음은 이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더욱 나아갈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한다.


"이렇게 멈춰버리면 안 돼, 더 이상 뒤처지면 안 된다"라며 우리는 자꾸만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잠깐 멈추면 다른 이들이 나를 앞서나가 버릴 것 같고, 두 번 다시는 다시 따라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먼저 몰려온다.


요즘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질주를 요구한다. 멈춰 서지 않는 것이 능력이고,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 곧 최선의 가치인 것처럼 보인다. 초고속 승진을 이룩해 내는 끊임없는 업무 역량이 그 사람의 가치가 되고, 기한 내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그 사람의 고과가 되는 사회. 그러나 역설적으로는, 멈추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지탱해 주는 진실된 힘이 될 때가 분명 존재한다.


자동차 경주를 떠올려본다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선수들도 결국 모두 '피트스탑(Pit-stop, 모터레이싱 경기 중 차량이 피트로 들어와 멈추어 섰다가 다시 나가는 것)'을 한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연료를 보충하고, 차량의 작은 결함과 문제들을 손보는 그 짧은 정차의 시간 동안 다른 차들은 한껏 앞서 나갈 수 있겠지만, 결국 정비 없이 달리던 차는 결승선에 도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잠깐 멈추어 점검이 이루어진 차량은 끝까지 달릴 수 있고, 때로는 더 멀리, 더 빨리 나아가기도 한다. 멈춤과 휴식은 실패가 아닌, 다시 달리기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휴식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비 오는 날 차 안에 앉아 좌석을 조금 젖히고, 천장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잔잔한 음악 속에서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번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 가득히 채워진 생각들이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으며, 미래를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다. 소소한 풍경이 마음을 살리고, 지친 하루를 다시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은 단순히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풀리지 않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우리를 더 무겁게 만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어떤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It is not things themselves that disturb us, but our opinions about them. - Epictetus)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 스스로를 탓하려는 습성이 있다. 남들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뒤처진다는 두려움에 억지로 속도를 내곤 한다. 하지만 멈춤은 포기가 아닌 또 하나의 출발선이다. 지친 하루가 끝난 저녁 무렵, 머릿속 얽힌 생각들을 잠시 내려두고 눈을 감아 보자. 그 짧은 쉼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 돌아옴을 느낄 것이다.


삶이라는 기나긴 경주 속에서, 끝까지 완주하는 이는 결국 쉼을 아는 사람이다. 잠시 멈춘다고 내가 가는 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멈춤 덕분에 길이 더 넓어지고 내일의 발걸음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쉬어본 순간이 언제였는가, 그리고 오늘 나는 얼마나 나 자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고 있는가. 잠시의 멈춤은 포기가 아닌 다시 달리기 위한 용기이기에, 오늘도 달리는 우리의 삶 속에 잠시 '피트스탑'의 시간을 내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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