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 _ 세상의 줄 서기 앞에서 할 수 있는 선택

휩쓸리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하여

by Evanesce

Politics [ pɑːlətɪks ]

1. (특정 집단, 조직 내의) 정치[정치적인 문제들]

2. (개인의) 정치적 견해[사상]


어릴 적 '정치'라는 단어는 너무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뉴스 속에서 보던 사람들, 정장을 차려입고 어딘가 진지한 얼굴로 고성과 손짓을 오가며 말다툼을 벌이던 모습들, 언젠가는 서로 밀치고 싸우며 자신들의, 자신이 속한 당파의 잇속만을 주장하던 장면들은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 장면들을 그저 '정치인들끼리의 싸움'이라 여기며, 정치 역시도 '그들만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숨 쉬고 일하고 사랑하는 이 모든 일상 속에 '정치'라는 요소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회의실의 공기 속에서, 조직의 줄 서기 속에서, 심지어는 가까운 인간관계 안에서도, 서로의 이익을 놓고 눈치를 보며,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배척하는 흐름 속에서 정치는 결코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라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줄 서기가 존재하고,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말에 힘이 실리는지를 재는 보이지 않는 저울이 있다. 지연, 학연, 혹은 단순한 소속감이 이해관계를 만드는 세상 속에서 때로는 진실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해지고, 옳고 그름보다 누가 말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 속에서도 '정치'를 겪는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작아짐을 느끼고, 피로해졌다.


이런 순간에서 가장 흔하게 드는 생각은 '회피'이다. "난 그냥 조용히 내 할 일만 하겠다." 하지만 정말 조용히만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는가. 무리를 만들지 않고, 줄을 서지 않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은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찬가지로 줄을 서든지, 아니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힘'을 갖추든지.


진실된 자유는 중립 속에 있다. 그러나 그 중립은 단순히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한쪽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압도적인 실력, 그것이 있어야만 가능한 위치다. 다수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으며 나만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정치적인 얽힘 속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혼자서 그런 힘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맞는 말일수도 있다. 혼자서는 약하다. 그러나 실력을 쌓고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꾸준함으로 다져진 하루하루가 나를 증명하고, 작은 성취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시킨다. 결국, 세상은 실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 사람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힘의 구조다. 누가 발언권을 갖고, 누가 흐름을 주도하며, 누가 가장 많은 사람의 귀를 사로잡느냐이다. 그 안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삶도 어쩌면 또 하나의 정치이기에, 우리는 피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길러야 한다.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을 만큼의 단단함과 실력,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비정치적인 태도이다.


세상은 항상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둘로 쪼개져 편에 서지 않으면 배제되는 구조로 나뉘려 한다. 하지만 진실로 참되게 강한 존재는 그 이분법의 경계를 스스로 그어낸다. 어느 편도 들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배척당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가지 힘으로 그 자리를 지킨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을 가능하게 한 실력의 단단함.


우리는 모두 정치 속에 있다. 알게 모르게 영향받고,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결국 선택해야 할 단 한 가지는 압도적인 자기완성이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 누구도 쉽게 끌어당기거나 밀어낼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정치적인 현대의 세상 속에서,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묻는다, '줄을 설 것인가, 아니면 줄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될 것인가.'


keyword
이전 17화N _ 행한 것과 되돌아올 결과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