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것은 없다

3. 빌어먹을 팔자라니요.

by 이리니

내가 어릴 적 김장 날은 잔치 날 같았습니다.

배추를 100 포기 150포기씩 담그고 서로 나눠먹기까지 하다 보니,

젓갈냄새가 강한 김치부터 깔끔한 맛의 김치까지 다양한 김치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맛을 알고 보니 나름대로 어느 집의 김치가 조금 더 입맛에 맞더라 하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놀러 오셔서 며칠 지내시게 되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말씀을 좀 함부로 하시는 분이라서, 어린 마음에 미움받지 않으려고 뭐든 열심히 잘하려고 비위를 맞추던 시절이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누구네 김치가 내 입맛에 조금 더 맛있었다는 말을 무심코 했는데

그 말에 외할머니가 대뜸 남의 집 음식이 더 맛있으니 빌어먹을 팔자인가 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어먹을 팔자라니......

누가 거지가 팔자라고 하는데 화가 나지 않을까요?

화가 나고 속상한데 자존심이 상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서른 살이 한참 넘은 어느 날 엄마와 대화하던 중에 이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뭐 그런 말을 했대 “ 한마디로 끝냈습니다.

내 엄마도 내 방패는 되지 못한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으므로,

음식 부심이 큰 엄마가 다른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고 서운해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있던 내가 이젠 한심합니다.

그때는 제가 자존감도 없는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강해진 지금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달라져있으니까요.

지금 그런 말을 듣는다면

“매번 엄마의 음식이 맛있을 수는 없습니다.

맛있는 것을 잘 아는 것은 빌어먹을 팔자가 아니라 맛집에서 사 먹거나 내 집에 훌륭한 찬모를 둘 만큼 내가 부자가 되려 나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취향을 정확히 아는 건 예민하다고 후려칠 일이 아니라 메타인지가 확실한 멋진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 손으로 하기 싫다면 사 먹어도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요리하는 그 시간이 나를 위하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그 시간을 돈으로 사서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돈으로 산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나 역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한몫을 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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