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들다.

제13장.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

by 슈우

1. 다가오는 순간, 미끄러지는 마음

모모코가 한국을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도쿄로 돌아갈 항공권은 이미 예약되어 있었고, 그녀는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다.


눈에 익은 거리, 향기에 익숙해진 사람, 그리고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감정들.


그 모든 것이 마치, 공항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의 비행기 티켓처럼 손끝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류는 그런 모모코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말없이 그녀 곁에 있어 주었다.


말보다 행동이, 확신보다 기다림이, 서로를 감싸는 방법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한 군데만 더 같이 가주면 안 될까요?"


모모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디든요."


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2. 한옥의 시간, 담장 너머의 미래

모모코가 택한 장소는 북촌 한옥마을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그곳이었지만, 그녀는 유명한 포토 스폿이 아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조용한 골목을 따라 걷고 싶다고 했다.


"이런 데, 어릴 때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봤어요." "오래된 돌담길, 나무문, 창호지…" "마치 시간의 결이 남아 있는 장소 같아서."


그녀는 담장 곁에 서서 오래된 나무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엔 고요함이 있었다.


인기척 없는 정원, 햇살만이 머무는 뜰.


"이런 곳에, 나중에 함께 살아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꼭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어디든…"


그 말에 류는 조용히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는 이미 함께 기억을 지어가고 있으니까." "그게 시작인 것 같아요."


그 순간, 담장 너머로 벚꽃 한 송이가 바람에 날렸다.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은 그것이 만들어주는 공기 속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 장면은, 그들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사라지지 않는 장면으로.


3. 오래 기억될 순간, 필름 속의 미소

돌아가는 길, 모모코는 갑자기 한 카페 앞에서 멈췄다.


입구에 걸린 메뉴판 아래,


“Film camera available for rent”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 찍을래요."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즉석에서 필름 카메라를 대여해 류에게 건넸다.


"사진 찍어줄래요? 오늘의 나."


류는 웃으며 셔터를 눌렀다.


모모코는 렌즈 너머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바람이 머리를 흩뜨리고 있었고, 눈동자엔 반짝이는 빛이 담겨 있었다.


찰칵.


그 순간은 그렇게, 하나의 필름에 새겨졌다.


"이제 나도, 당신 눈 속의 내가 궁금해졌어요."


그녀의 말에 류는 조용히 대답했다.


"항상 담고 있었어요." "사진보다 더 또렷하게, 내 안에."


4. 마지막 밤, 사라지지 않는 사랑

저녁 무렵, 두 사람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말수가 줄었고, 서로를 향한 시선이 더 길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저녁.


그러나 해는 지고 있었고, 현실은 다가오고 있었다.


모모코가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류는 조용히 침대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나를 잊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말은 마치, "나를 잊지 말아 줘"라는 부탁 같았다.


모모코는 정리를 멈추고, 류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잊지 못해요."


"내가 한국에서 살아온 모든 날은…" "당신과 함께 만든 기억이에요."


"매일 밤 꿈속에라도 다시 여기와 있을 거예요."


그녀는 천천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 밤, 서울의 마지막 밤이었고,


사랑은 더 이상 거리나 국적을 측정하는 단위가 아니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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