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들다.

제12장.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마음

by 슈우

1. 머물고 싶은 공간

모모코는 류보다 먼저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의 무늬,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한국의 햇살, 낯선 소리의 도시.


하지만 그녀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곁에 누워 있는 사람 덕분에 이국은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어젯밤 류가 데워두려 했던 떡볶이가 냄비에 담겨 있었고, 그 옆에는 손글씨 메모가 놓여 있었다.


"나는 슈퍼에 다녀올게요." "아침에 필요한 것들 사오려고요." "깨우지 않으려 조심했어요." "천천히, 편하게 있어요."


모모코는 그 메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웃었다.


2. 함께 맞춘 아침, 작은 일상이 되는 순간

류가 돌아왔을 때, 모모코는 냄비를 데우고 있었다.


"정말 데우고 계셨네요." "예상보다 부지런한 손님이에요."


"손님이라니." "이제는… 반쯤은 여기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류는 미소 지으며 검은 비닐봉지에서 신선한 과일과 식빵을 꺼냈다.


잠시 후, 간단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떡볶이와 토스트, 바나나, 그리고 따뜻한 커피.


두 사람은 그 조합이 다소 엉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척 즐거워했다.


함께 먹는다는 것 자체가 모든 맛을 특별하게 만들었으니까.


3. 맞닿지 못한 순간, 더 선명한 감정

아침 식사 후, 그들은 근처 작은 미술관에 들렀다.


고요한 전시장 안에서 둘은 마주 보는 것보다,


같은 그림을 함께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모모코가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바다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손은 완전히 맞닿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엔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이거… 뭔가 이상하죠."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못 잡고 있어요."


류가 곁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 틈 덕분에 두 사람 사이 감정이 더 선명해져요." "완벽한 접촉보다, 닿지 못한 순간이 더 강하게 기억되기도 하니까."


모모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느껴왔던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해석되는 듯했다.


"그림 속 두 사람처럼, 우리도…" "어떤 순간에는 맞닿을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서로를 향해 다가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류는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두 사람 사이엔 이제 틈이 없었다.


4. 과거의 시간, 함께 남기고 싶은 기억

오후엔 카페에서 쉬었다.


모모코가 류의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이거… 작년에 찍은 사진들이에요?"


"응." "혼자 여행 다녔을 때 찍은 것들이에요."


사진 속에는 산책로, 공원, 서점, 바다.


대부분 혼자서 찍었거나, 배경만 담겨 있었다.


모모코는 한 장을 가리켰다.


바다를 배경으로 류가 앉아 있는 옆모습.


"이 사진… 누가 찍어줬어요?"


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셀프 타이머요." "삼각대 없어서 돌 위에 올려놓고 겨우 찍었죠."


그 대답에 모모코는 피식 웃었다.


"다음엔 내가 찍어줄게요." "당신이 혼자 있던 시간, 이제 나도 같이 남고 싶어요."


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슴 안에서 작은 물결이 일었다.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마음.


그건 어느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5. 더 가까이,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사랑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다시 해변을 찾았다.


낮보다 사람이 적은 해안선, 바닷바람이 더 시원했다.


모모코는 신발을 벗고 발을 모래에 묻었다.


"나는 이런 거,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모래를 느끼는 거."


류도 옆에 앉았다.


"이제 자주 해요." "모래에 손도 묻히고, 바다도 자주 보러 가고."


모모코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내가 다시 돌아가면 괜찮을까요?"


그 질문에 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괜찮지 않을 거예요." "많이 허전하고, 자주 생각날 거예요."


"하지만… 그게 사랑이잖아요." "괜찮지 않은 걸,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마음."


모모코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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