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예상보다 가까운 감정
호텔 창가에 앉아 모모코는 조용히 커튼을 걷었다.
부산의 아침은 일본에서 본 것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바다는 더 가까웠고, 거리의 소음은 낮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돌려 류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내리는 류의 뒷모습.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낯설었다.
잠시 후, 그는 따뜻한 잔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한국에서 마시는 첫 아침 커피, 어때요?"
모모코는 잔을 받아 들고 천천히 향을 맡았다.
익숙한 원두 향. 하지만, 낯선 공기 속에서 또 다르게 느껴졌다.
"맛있어요." "당신이 내려서 더 그런가 봐요."
류는 조용히 웃었다.
아무런 사건이 없는 그 조용한 아침이, 두 사람에게는 오래 기다려온 시간이었다.
첫날의 계획은 단순했다.
해운대 바다를 걷고, 오래된 동네 골목에서 분식을 먹고, 저녁엔 바다 가까운 야경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다.
일정 하나하나가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 위를 나란히 걷다가, 모모코가 조용히 물었다.
"이런 데서, 혼자 걸어본 적 있어요?"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있죠." "주로 일이 너무 바쁠 때, 생각 정리하려고."
"그땐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주 특별해요."
그 말에 모모코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처럼, 마음속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점심은 작은 골목 안 분식집에서 먹었다.
떡볶이, 순대, 김밥.
모모코에게는 모두가 새로운 음식이었다.
그녀는 젓가락질이 익숙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먹으며 자주 웃었다.
"이거, 맵긴 하지만… 계속 손이 가네요."
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중독성이 있어요. 한국 음식 대부분이 그렇죠."
식사를 마친 뒤, 류는 포장해서 남은 떡볶이를 들고 나왔다.
모모코가 조용히 물었다.
"이거, 간식이에요?"
"아뇨." "내일 아침에 데워서 먹으려고요." "추억을 간직하려면, 냉장고에 하나쯤은 남겨놔야 하거든요."
그 말에 모모코는 입가를 살짝 감쌌다.
웃기보다, 울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저녁 식사는 바다 근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했다.
테이블 위엔 작은 초가 놓여 있었고, 멀리 오륙도와 바다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와인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특별한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게… 믿기지 않아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화면 속에서만 보던 얼굴이니까요."
모모코는 잔을 들었다.
"나도 그래요." "이렇게 말하고, 만지고, 웃고 있는 이 순간이… 현실이라니."
그녀는 천천히 잔을 들고, 류와 부딪혔다.
"우리, 이건 기억하자." "첫 번째 ‘함께’의 밤이니까."
호텔로 돌아오는 길, 밤바람이 조용히 얼굴을 간질였다.
모모코가 불쑥 말했다.
"이런 감정…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류는 조용히 물었다.
"어떤 게 달라요?"
"가까워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가까웠던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걸으면서 느껴요." "당신이 멀리 있었던 시간이, 사실은... 내 안에 늘 있었구나, 하고."
그 말에 류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를 바라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요." "당신이 지금 말한 감정, 똑같이 느끼고 있어요."
말은 끝났지만, 그 감정은 그대로 이어졌다.
예상보다 가까운 감정이, 지금 이 거리를 더 따뜻하게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