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버거가 출현하다
보카 버거와 함께 그랜드 캐년 가는 길
2004년의 늦여름인가 우리 가족은 그랜드 캐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 중 울창한 삼나무 숲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먹던 수제 '보카 버거'는 정말 맛이 좋았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달리다 쉬며 끼니를 해결할만한 휴게소가 없었기에 먹을거리들을 집에서 준비해야만 했다.
미국 도착 직후 비건 지향이라는 내 얘기를 듣고,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소개해 준 분이 있었는데 바로 초기 미국 거주 당시 도움을 많이 주신 목사님 부인이었다. 그때까지 한국서 온 베지테리언은 처음이라며 여러모로 배려를 하곤 했다. 알려준 대로 대형 마트인 '코스트코'에 서 가성비 좋은 대용량 보카 버거를 발견하고 신세계를 만난 듯 반가워했었다. 몇 년 후 한국에 들어왔고, 비건 버거며, 보카 버거는 바쁜 생활 속에서 잊혀 갔다.
식물성이라도 피 흘리는 버거는 싫어
비건 인구는 조금씩 늘어났고 식물을 원료로 한 대체육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쇼킹한 사건은 '피 흘리는 버거'의 출현이다. '비욘드 미트'가 국내에 처음 들어오며 터뜨린 광고는 꽤 놀라웠다. 비건, 논 비건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주장처럼 비욘드 미트의 인기는 대단했다. 비욘드 미트 더 비욘드 버거(Plant-based burger patties)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비욘드 미트에서 개발한 식물성 고기 패티이다. 고기와 달리 콜레스테롤 등 몸에 해로운 요소들이 모두 없다는 비욘드 미트는 제품 론칭 전부터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인사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은,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 회사라고 한다.
'비욘드 미트'가 국내에 소개될 무렵(그때는 코로나가 없었으므로 대규모 행사가 열리던 때) '비건 페스티벌'에서 의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비욘드 미트'를 주재료로 한 비욘드 버거 세트였다. 그 코너에서 기다리는 줄이 어찌나 길었던지 포기하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비욘드 미트를 시작으로 국내외 대체육 시장은 발전과 확산을 해 검색창에 비건 대체육을 치면 다양한 제품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식물성이라 해도 각 브랜드마다 원료와 레시피가 달라서인지 입맛과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아내는 것에도 품이 많이 들어간다. 내 경우에 '비트'로 육즙을 표현한 비욘드 미트 맛은 너무 리얼해서 슬쩍 거부감이 들었다. 불맛도 식감도 다 놀라웠다. 그래서 그런지 비욘드 미트는 육류 애호가들도 선호한다는 말을 들었다. 맛도 영양도 다 잡았으나 가격 면에서 타제품들과 경쟁을 하고 있나 보다.
다 그립다
'어떻게 하면 지구에 덜 해를 끼치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기치를 걸고 해마다 10월이면 열리던 축제였던 '비건 페스티벌' 도, '그랜드 캐년 가는 길'도 그립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한 줄 알게 된 아기들의 미래를 우리 어른들은 과연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지금 나는 쓸모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참 모호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더 나을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