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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31. 2021

사막에 뜬 초승달, 몽가타

카페에서 팻 메스니가 흘러나오면 완전 좋아요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비건 식당' 하나 생긴 일이 그토록 흥분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몽가타의 문을 열고 들어가던 첫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건 식당'에 가려면 일단 서울로 나가야만 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동네 근처에서 지인이라도 만날 때면 일반 식당에서 비건 옵션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일은 눈치 보이는 일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진구가 불편함을 느낄까 봐 맨밥에 구운 김만 먹을 수 있어도 만족한다고, 괜찮다고 도리어 고마워했던 경기도 비건의 날들이라고나 할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참 사소하고도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다.


된장찌개 하나를 시키려 해도 미리 끓여놓은 고기 육수로 국물을 잡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니 비건은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비빔밥의 비빔고추장에까지도 고기가 들었나, 안 들었나 물어봐야만 했으니 밖에서 지인을 만나 밥 한 끼 먹는 게 별 일 아닌 게 아니기도 했다. 이쯤에서 듣기 쉬운 말은 대개 이런 종류다. '그러게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피곤하게 사냐'는 이런 류의 질문은 이제 너무 식상해서 그만 좀  듣고 싶은 비건의 마음이다.

몽가타 실내  아기자기한 소품 코너/ 월간 비건 잡지들과 비건 관련 책자들이 놓여있다.


산본 몽가타는 '와인바'라는 이름을 함께 쓰는데, 음식과 함께 비건 와인, 그리고 칵테일도 주문받는다. 어쨌거나 그 모든 요리며 안주가 다 비건인 그런 곳이 경기도 산본에 생긴 것이었다. 중심가에서 바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서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불에 태우는 듯한 고기 타는 냄새를 맡으며 걸어야 했다. 마침내 각종 고깃집 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몽가타'가 있는 4층에 도착 문이 열리니 마치 딴 세계로 통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 자태로 '몽가타' 정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간 '몽가타'는 기대 이상으로 넓은 실내와 빈티지하고도 세련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오는 손님을 위한 공간은 메인 공간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적당히 안락한 넓이와 인테리어가 갖추어져 있었다. 벽면에 L.P 판 장식이 있는 작은 무대가 있었고 악기도 놓여있었다. 얼핏 그림과 밴드, 악기까지 준비되어있던 발리 우붓의 비건 카페가 떠올랐다.


딱히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이 없는 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이다. 그곳 식당이 우리의 식당과 다른 점은 주문할 때 '이거 빼 달라, 저거 빼 달라' 요구하는 게 눈치 보며 할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손님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점이기도 하며, 다양한 개인의 취향이 '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팻 메스니’의 ‘비욘드 더 미죠리 스카이’가 공간을 휘감으며 흘러나온다. 하필이면 '팻 메스니'의 기타 소리가 흐르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육식의 메카' 같은 곳에 비건 식당을 낼 생각을 했을까. 참 선한 얼굴과 눈빛을 한, 카페 주인이라기보단 한 예술할 것만 같은 분위기의 젊고 친절한 비건이 사장인 몽가타였다.

감자와 표고버섯 캐슈너트와 신선한 야채를 끓여 만들었다는 크램 차우더 스푸는 내 최애 메뉴
여름 메뉴인 샐러리 냉국수
치킨 없는 비건 치킨 콜리플라워 튀김 feat : 소규모 출판기념회 때 찍힌 내 책

겨울 대표 메뉴로는 비건 크램 챠우더 수프가 있고, 여름 대표 메뉴로는 샐러리 국수가 있다. 물론 나는 두 메뉴를 다 먹어봤으며 두 메뉴에 다 중독되고 말았다. 일반 크램 챠우더는 익히 알려지다시피 조개나 해산물을 주재료로 만드는 따뜻한 스푸이다. 몽가타의 크램 챠우더 스푸는 감자와 캐슈너트 등을 요리 재료로 쓰나 본데  오묘하고도 풍미 넘치는 부드러운 스푸에 비건 빵을 찍어 먹을 때는 단순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여름 메뉴인 샐러리 국수는 시원하고도 약간의 자극적인 맛이다. 국수는 얼음물에 담갔다가 건지는지 탱글 거리고 국물은 적당히 새콤달콤 짭짤한데 샐러리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다. 일부러 가서 먹고 싶을 만큼 여름이면  생각나는 맛이다. 치킨을 쓰지 않은 치킨 맛은 바로바로 '콜리플라워 튀김'이다. 다른 비건 메뉴에 비해 일단 튀겼으니 칼로리가 높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맛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생각만 해도 맛있는 맛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사막 위에 뜬 초승달 아래에 가 따뜻한 크램 챠우더 스푸를 먹고 싶어 진다.




알림 : 안타깝게도 산본의 비건 명소였던 몽가타는 2021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새로운 곳으로의 이전을 준비 중입니다. 필자가 이 글의 초고를 쓸 당시엔 몰랐던 사실이며 조만간 새로운 곳에서 몽가타의 시즌 2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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