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하게 된 비건을 위해 도착지의 비건 채식과 채식 옵션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본다면, 고맙게도 그는 일단 비건 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높은 편에 속한다. 아주 가끔씩 세 사람이 모여 인근의 비건 식당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참 우연한 시작인 데다 이렇게 길게 이 밥 모임이 이어질 줄은 짐작하지 못한 일이다. 이 모임의 공통분모라면 우선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이웃사촌'이라는 점, '시', 그리고 'C대' 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중에 한 분은 선생님이시고 둘은 그분의 학생들이기도 했다. 아무튼 지금은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 할 수 있다.
지난주 목요일, 겨울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가을날을 즐기고 싶었는지 그동안과 달리 조금은 먼 강화도엘 다녀왔다. 브런치 북 감정적 비건 속에서 소개했던 서울의 합정 쿡앤북이 문을 닫고 강화도 인근 석모도에 새로 연 비건 지향 카페 '순간의 순간' 때문에 잡힌 일정이기도 했다. 세 사람과는 오래전 쿡앤북에 가 밥을 먹었었기에 생길법한 공통의 동기유발이기도 했을 터였다. C 시인은 미리 알아본 식당의 주소를 내게 보내주며 전화로 알아본 바로는 비건 메뉴가 있을뿐더러 당연히 육수를 '채수'로 낸다고 친절히 자세한 설명까지 하더란다.
코로나로 웬만해선 만남을 갖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기에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된 때를 맞아 오랜만에 바다 뷰를 보며 강화도로 향하는 길은 떠남 그 자체로도 기분이 좋았다. 어느덧 늦은 점심시간이 되어 강화도 #채식을 치면 유일하게 검색되는 그 식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에 인생 전골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온갖 버섯과 채수가 주인공인 버섯전골이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장님은 우리 일행이 다 비건인 줄 아셨는지 자연스레 비건 메뉴를 주문받았다. 그러던 중 비건 취급받는 게 싫지는 않지만 은근 고기를 좋아한다던 C가 '사실은요' 하며 스스로 부연 설명을 했다. "사실은 이 쪽만 완전 비건이고요, 우리는 비건은 아니에요"라고 굳이 정직하게(?) 밝혔다. 그러자 사장님은 "음 그럴 때는 무조건 비건을 기준으로 메뉴를 고르셔야 해요"라고 명쾌한 응답을 해오는 게 아닌가. 보통의 식당에 가서 '이거 빼줄 수 있나요? ', 혹은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소심하고도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봐야 했던 때에 비하면 괘나 산뜻한 시작이라 할만했다.
예전에 비하면야 많이 나아졌지만 같은 값을 지불하며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일반식당에서 비건 옵션을 주문할라치면 괜히 눈치 보는 일, 비건이라면 다들 겪어 본 일 일 것이다. 안된다고 하면 맨밥에 김, 운이 좋아 육수 아닌 맹물에 끓인 된장찌개라도 받게 되면 감동이 물결치던 그런 일 말이다. 상에 오른 반찬들 중 김치에는 젓갈이, 마늘 쫑에는 마른 새우가 들어갔다며 그 둘만 논 비건 반찬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김치는 고기 아니지 않나?' '채소도 아플 텐데 어떻게 먹나?' 같은 식의 반론 대신 그냥 사실 그대로 알려주는 태도가 좋았다. 나도 모르게 사장님에게 엄지 척을 해 드렸다.
아름다워라 버섯의 자태
모두부도 맛있었음 그 옆의 고기 같은 거는 콩고기
식당에 들어서서부터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메인 메뉴로 주문한 채수 버섯전골의 자태 앞에 또 한 번 감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키운 텃밭채소와 국내에서 재배된 수십 가지의 버섯은 마치 활짝 핀 꽃처럼 보였다. 처음에 씨앗이었던, 포자였던 작은 싹이 자라 완성된 버섯이며 , 식물의 생명력은 건강하고도 아름다웠다. 비건 채식을 하며 놀라운 건 맛을 느끼는 지점이 점점 더 섬세 헤진다는 점이다. 원재료가 가진 풍부한 맛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더불어 그 식물을 원료로 요리된 밥상 앞에 한없이 고맙고 경건해지는 마음이 들곤 한다.
L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시면 문득 생각 난 듯' 아, 채식해야 하는데', '동물 학대하는 놈들 너무 나빠' 하시며 내심 품고 있던 생각들을 내비치시곤 했다. 선생님 내면에 자리 잡은 자비심과 이성은 이미 탈육식의 마인드를 갖고 계신 듯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언젠가 C시인은 이런 얘기를 실토(?) 한 적이 있다. 비건 점심을 먹고 잡혔던 저녁 약속이 고깃집에서 잡혀 고기를 먹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는 그런 얘기. 굳이 안 해도 무방할 그 얘기가 떠오른 건, 아마도 그의 내면에서 움직인 L선생님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대놓고 '고기를 먹지 말아라', '육식은 고통의 산물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비건인 나를 보자 떠오르는 그런 거 말이다. 일부러 비건 식당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주위에 널려있는 게 치킨집, 고깃집, 횟집이다. 게다가 방송은 경쟁이라도 하듯 육식 먹방에 낚시 프로가 한창이니 일반인이 탈육식의 식단이 있는 식당을 선택하기란 아직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영국의 팝 밴드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제안한 <고기 없는 월요일> 이란 캠페인이 있다. 공장식 축산업 내 동물들의 고통,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 중 최소한 하루는 채식을 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은 캠페인의 이름이자 해당 캠페인을 주도하는 비영리 시민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폴 매카트니는 이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부터 채식을 실천하며 채식이 가진 긍정적인 효과와 그 의의를 설파해 왔다.
1년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세 사람이 함께 모이는 '고기 없는 밥 모임'을 하게 되면 '고기 없는 월요일'의 캠페인에 동참한 효과를 보게 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고기 없는 밥 모임'은 계속 이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주 볼 수록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으니 송년회를 핑계로 한 번 더 밥을 먹어도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