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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Nov 26. 2021

대형 마트의 방 한 칸

비건의 장보기



이곳을 지나다보니 문득 '지상의 방 한 칸'이라는 제목의 '시'와 '소설' 이 떠오른다. '시'는 김사인 시인의 것이고, '소설'은 '박영한'소설가의 것이다. 집 근처 대형 마트 한편에 자리 잡은 '채식주의' 코너 앞을 지나다 생긴 일이다. 어디에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국내 굴지의 대형 마트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할 정도로 쇼핑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하지만 비건에게는 참으로 없는 게 많은 곳이기도 한 게 대형마트다.   

   

일단 지하 식품관에 가득 들어찬 육. 해. 공을 총망라한 식재료들 중 살 수 있는 건 사실상 거의 없는 편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그 거대한 곳의 한편에 채식 냉동식품을 살 수 있는 '채식주의'코너가 생긴 것이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베지테리언으로 10년, 비건으로 산지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터넷이나 서울권의 전문 비건 식품점이 아닌 근처에서 비건 냉동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정육코너는 말할 것도 없고, 우유와 달걀을 비롯한 일체의 동물성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사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비건 빵 제품은 아직도 없음) 칼슘두유의 명목으로 동물성 칼슘 성분이 첨가된 두유로부터 만두까지 대형 마트에서 비건은 최소한의 냉동식품조차 살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니 전 냉동 코너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을 차지하더라도 이 작은 채식주의 코너가 ‘지상에 새로 생긴 방 한 칸’처럼 내겐 소중하게 다가왔다.     


혹시라도 이 채식주의 코너가 찾는 이가 적어져 철수라도 하게 될까 싶어 일부러 들려 뭐라도 한 가지 사오기도 한다. 신제품이 나오면 일단 그 코너에 선을 보이는 듯했다. 우유가 아닌 코코넛 유로 만든 비건 요구르트가 첫 출시되었을 때도, 거기서 그걸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어쨌거나 거길 지날 때마다 제발 철수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채소와 곡물을 주원료로 만든 이 작은 방 한 칸의 냉동식품을 제외한 나머지 방들에 채워진 것들은 대부분 농장동물들이 주원료가 된 제품들이다. 소, 돼지, 닭, 오리, 송아지가 먹을 우유를 비롯 바다에서 잡혀온 물살이들의 몸이 다양한 크기와 기능을 고려해 잘리고 갈려서 편리하게 포장되어 있다.   

   

코로나 이후 특히 늘어난 배달 외식업 시장,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참 고마운 배달맨들이 지나간 자리엔 영원히 썩지 않은 채 지구를 병들게 할 일회용품들이 남는다. 양심에 맡기기에는 턱없이 미약한 규제 방식이다. 배달과 실내 영업을 동시에 하는 식당들에서 내놓은 시뻘건 국물이 묻어있는 흰 플라스틱 탕 그릇을 보는 게 참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북극해에 떠있는 조각 얼음 위에서 새끼곰을 끌어안고 있는 북극곰의 영상은 우리가 처한 지구 온난화의 현실을 자각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란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아직도 우리는 '불타는 지구'에 대한 위기의식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전 세계 배출량의 18%를 차지하는데, 자동차, 비행기 등 교통수단이 내뿜는 배출량(13.5%) 보다 많은 수치를 보여준다. 게다가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강력한 온실효과를 발휘하는 메탄가스를 대량 방출한다고 한다. 또한 가축을 방목하고, 가축에게 먹일 작물을 기르기 위해 땅 표면의 45%를 쓴다고 한다. 브라질 아마존 파괴의 91%가 축산업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실제 햄버거 패티 한 장을 생산할 때마다 약 5㎡의 열대우림이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지테리언 식사를 하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4.2기가 톤으로 줄고, 비건 식사로 할 경우 3.4기가 톤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지상의 방 한칸으로 시작해 환경문제에 까지 이르렀다. 이건 아마도 내 비건 생활방식의 선택 기준으로 인한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까 싶다. 건강이나 다이어트나, 종교 때문이 아닌 이유. 즉 고통을 느끼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즉 감정 있는 동물들이 고기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 어린 삶이 슬프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고통 받는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 최대한의 일은 ‘비건으로 사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 참으로 미약하지만 이게 내가 '지상의 방 한 칸'처럼 작고 누추한(?) 그곳이 문 닫게 될까 봐 자주 찾는 까닭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동네 마트에서 대체육 비건 양념 갈빗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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