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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pr 06. 2022

지금 백이진 기자가 그립다

'종군 기자'라는 별명 도 함께


오늘은 '드라마 리뷰'


'사랑과 우정' 만이 삶의 전부분을 차지했던 한 때가 내게도 있었던가?라고 자문하게 만든 드라마 '스물다섯스물 하나'에 우연히 빠져들게 되었다. 전적으로는 아니어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드라마 속 '희도와 유림' 만큼 극적인 구도는 아니었으나, 그 무렵의 내 우정 또한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진지했었다. 역시 '희도와 이진' 만큼은 아니었으나 나 또한 '사랑' 앞에서는 인생 전부를 걸어도 좋을 거라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물론 늘 행동과는 상반되곤 했지만 말이다.



감정 이입되는 장면들이 꽤 있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백이진 기자에게로 향한다. 드라마 속 시간인 2001년 희도와 이진은  붉은색 커플 여행용 캐리어를 쇼핑한 후 함께 떠날 최초의 여행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던 9.11 테러가 일어나는 바람에 백이진 기자는 급히 뉴욕으로 파견되게 된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변화가 일어나는 징후에 대한 개연성을 충분히 준다.



테러 직후의 뉴욕에 도착한 백이진 기자의 첫 일은 취재를 위해 살아남은 자들을 찾는 거였다. 희도에게만큼은 믿음과 신뢰를 주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던 기자 이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도와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게 '기자정신'이었다는 걸, '이 작가는 지금 백 이진이라는 캐릭터를 빌어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독자로서 짐작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첫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집에서의 취재는 문전박대로부터 시작된다. 테러당한 건물에서 빠져나오던 순간을 설명해 줄 수 있냐는 기자의 말에 '살아남은 자'는 소리 지른다. '네가 그 비참함을 감히 상상이냐 할 수 있느냐'는 욕설과 함께 내 쫓김 당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신문, 잡지 기자를 이름하는 '종군 기자'가 떠오르리만치 9.11 테러는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종군 기자' 같다는 소리를 듣던 학창 시절의 한때가 떠오른다. 다들 전공 책은 책 홀더로 묶어 한쪽 손에 들거나 끼고, 반대쪽 어깨에는 끈이 긴 작은 핸드백을 드는 게 유행이던 때였다. 나는 왠지 그 무렵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머리를 최대한 선 머슴애처럼 짧게 하고 꽤 큰 네이비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뒤에서 보면 소년 같은 체구인 데다 뭔지 모를 겉멋이 들어간 학보사 기자 시절이기도 했다. '종군 기자' 같다던 주위의 말에 괜히 으쓱해지던 청춘의 한 때였었다. 최근에 '외람이'라는 신조어를 처음 대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이 들어왔다 떠오른 한 때였다.



'기레기'에 이어 '외람이' 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왜 한때 선망했던 직업이었던 '기자'의 위치가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이 까닭은 외부에 있는 것일까, 외부에 있는 것일까. 어렵게 공부해 마침내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텐데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너무 복합적이다.



'기자의 양심', '기자 정신' 이란 말이 꽤 자연스럽던 한 때가 그립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가는 게 슬프지 않다고, 점점 더 현명해지는 거라고 용을 써봐도 나이가 든다는 건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게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테는 말이야'라고 한 때 내가 선망해 마지않던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기자의 품격'에 대해 내가 가졌던 그 꿈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다. 물론 누군가 듣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지난주에 드라마 '스물다섯스물 하나'는 끝났는데 나는 잘생긴 '백이진 기자'가 그립다. 스무 살 내 첫사랑처럼 긴 얼굴형에 사려 깊은 눈빛이 비슷한, 하지만 키는 훨씬 더 큰 그 정직하고 진실했던 그 기자 말이다. 바닷가를 뛰어놀던 천진난만한 친구들의 레트로 패션도 그립다. 희도와 유림이 펜싱 경기를 마친 후 서로를 안아주던 우정도 그립다.


지나간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늘 자리한다. 오늘부로 내 그리움의 자리에 기꺼이 첫사랑 닮은 '백이진 기자'를 들이기로 한다.




'사랑과 우정'의 한 때를 떠올리며 만들어 마신 오늘의 비건 푸드는 딸기와 바나나와 두유를 함께 갈아먹는 비건 스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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