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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pr 19. 2022

샴푸의 요정

비건 요가 샘과 그 남자 수련생의 만남


오늘 분위기는 '요가 선생'


그간 여러 요가 수련생들을 만나왔지만 그처럼 짙은 비누 향기를 폴폴 날리며 오는 회원은 처음이었다. 근거리 B시에 반려동물용품 매장을 운영하며 요가원 건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무슨 사무실인지는 밝히지 않음)로 매일 출근하는 남성이었다. 다소 터프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요가 수련과 인연이 깊었던지 1년 전쯤 옆 건물 요가원이 문 닫기 전까지 나갔었다고 했다.


내 요가원에서 첫 수련을 시작하기 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가 어떤 맘으로 이곳에 와 수련을 하려는지, 현재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요가 샘으로서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가 수련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요가 샘이 비건인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자꾸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오니까 불안을 느꼈고 마침 같은 건물에 생긴 요가원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육식과 술 담배까지 하는 그는 내 요가원 간판의 '비건'과 '몸, 마음, 숨의 조화'라는 글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기왕에 어렵게 맘을 내어 수련하기로 했으니 요가 샘의 진지한 조언과 안내를 받아들이겠냐고' 하자 그는 양처럼 온순한 얼굴이 되어 '그러겠노라고 수련 시작하고 싶다고' 바로 대답을 했다. 비로소 나는 일종의 '먹는 요가'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했다. 효과적인 요가 수련을 위해 육식보다는 채식이 좋다는 얘기. 몸의 움직임을 가볍게 해주는 소식이 좋다는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요가선생이 된 이후로 내게 생긴 긍정적인 변화는 이기적인 마음의 자리에 이타적인 마음이 들어섰다는 거다. 구석에 위치한 내 작은 요가원을 찾아오는 수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인연이 시작되는 그 지점부터 그의 '수련'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요가 자세를 할 때 특히 힘들어하는지,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 때인지 살펴보게 된다. 그 순간 가장 적절한 피드백과 핸즈온을 주고자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안색이 달라지는 게 보였다. 간혹 한 주를 거르고 수련하러 오는 날도 있는데  "선생님,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로 수련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에도 피로와 함께 어떤 그늘이 느껴지곤 했다. 그가 일상에서 어떤 일들을 겪고 사는지 알 길이 없었고, 당연히 내 영역 밖의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서는 항상 방금 씻은듯한 비누 향내가 났는데, 옆에 매트를 깔고 수련하는 여성 수련생들과 요가 샘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샴푸의 요정 수련생의 고관절 베이식 플로우  


그는 정말 요가 수련을 좋아했다. 아니 사실은 힘들어하면서도 꾸준히 수련하고자 애쓰는 수련생이었다. 내 말을 듣고 수련하러 오는 날에는 육식과 술을 피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첫 수련 때 그의 자세 수련 지도는 난 코스 중의 난코스였다. 어깨와 등은 특히 바위처럼 굳어있었고 척추 통증까지 있어서 단순한 자세에도 곡소리(?)를 내곤 했다. 재해석한 프라나 야마 호흡과 명상으로 시작해서 꼼꼼한 워밍업이 그에겐 필요했다. 워낙 소그룹 요가원이다 보니 가능한 수련방식이었다. 그 후 그는 실로 놀라울만치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개의 수련생들, 물론 나도 그런 적 있었지만 어렵던 자세를 완성시킨 후엔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새로운 자세에 도전하고 싶고, 간혹 무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해내고 싶어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지도자나 수련자나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도전'과 '욕심'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기에 수련생들을 잘 살피고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수련생에게 '자세 욕심' 보다는 '요가 수련'에 적합한 생활방식 즉 '요가와 채식'에 대한 조언을 하곤 했다.


다행히도 그는 이런 내 수련 지도법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는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수련하러 나왔다. 코로나로 요가원 문을 닫은 지 2년을 넘겨간다. 코로나 좀 가라앉으면 반드시 이 건물로 다시 컴백해달라고 하던 향기를 품 품 풍기며 수련하러 나오던 수련생이었다. 마지막 수련 날 그가 쓰던 요가매트와 요가실에 있던 화분 하나를 선물로 줬다. 수련과 영 담을 쌓지 말라는 요가 샘의 당부를 담아서 말이다.  


오늘은 문득 과연 그 후로 그는 요가매트 위에 몇 번이나 올라갔을지, 내가 준 식물은 잘 생존해있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담배연기로 '식물을 단명시키진 않았겠지?' 잠시 염려가 되었으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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