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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May 12. 2022

진 꽃 나무 아래에서

시, '무언가'를 읽어본다


오늘 분위기는 '시' 


5월, 지금은 초록의 순정함이 절정에 이르는 때이다. 나이 들수록 더 명징 해지는 알아차림이 있는데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그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아름다움'이 보일 때가 있다.


두 번째 시집 <절벽 수도원>이 나온 지 올해로 6년 차이다. 여전히 좋은 시를 쓰고 싶고, 좋은 시집을 펴내고 싶다.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시 한 편을 쓴다한들 누가 과연 그 시를 읽어줄지 희망도 확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시집을 위해 쓰일 나무에게 무던히도 많이 많이 미안해할 일이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걸 욕망한다. 일종의 업 아닐까 싶다.   


가만히 짐작해본다.
이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시'를 버리던가, 그것을 극복할 만큼 부끄럽지 않을 '시'를 써야 할 것이다라고.

별도리 없는 마음으로 시집 속에 있는 시 한 편을 꺼내 본다.


어느 해 4월에 쓰인 '무언가'라는 제목의 이 시는 해마다 이 계절쯤 어울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바짝 마른 몸으로 겨울을 통과해온 나무들에 수액이 돌기 시작하자,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 나무를 덮었다.  
그 무렵에도 나는 나무 아래 벤치에 오래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바람결에 연한 꽃잎이 흩날리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행복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 수 없이 쏟아지는 인간의 말 말 말 보다 나무 한 그루가 보여주는 '역사'를 더 신뢰하게 된다. 그래서  졸 시이지만 여기 소개해 드리기로 한다. 




무언가   


이해받고 싶어서

말을 많이 하고 돌아섰는데

쏟아낸 말보다 무거워지는 이 느낌 무언가

목이 짧아도, 슬픈 짐승 같은 

그대에게

말의 위로는

약인가, 악인가

말을 해주오


참을 수 없어 누군가를 찌르고

그보다 날이 서 돌아오는

말의 부메랑, 결국은 

사람의 일

꾸미고 보태고 플러그를 꼽았다 뺄 때

문득, 어깨 위로

연분홍 꽃잎들


우연히 기대선 벚나무 아래

쓸모없을 문장을 받아 적는다

들어낼수록 

소란한 인간의 슬픔과

간곡한 침묵의 

말 

말 

말 

                                          2016 김윤선 시집 <절벽 수도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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