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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ul 11. 2022

라떼, 비건은 말입니다

비건 마요네즈와 시골 비건 건빵의 경우


2000년대 초. 중반 국내 비건 시장은 지금과 비교해볼 때 규모가 꽤나 작았었다. 


우유와 달걀과 버터 등의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케이크류는 물론, 흔한 식빵조차 우유식빵이 대세였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비건 케이크와 도넛, 비건 식빵쯤은 쉽게 살만큼 비건 베이커리의 발전은 놀랍다. 심지어 '2022년' 현재는 집으로 배달되어오는 '비건 밀 키트'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다양한 대체육들, 비건 만두, 비건 냉면에 비건 김치를 비롯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비건 식당들을 보며 요즘 '시작하는 비건'들, 라떼에 비해 비건하기 참 편해졌구나 싶다. 

그립다, 자주 다니던 거기


아마도 2007년쯤이었을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미국 샌프란 시스코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다가 '비건 마요네즈' 한 병을 여성 검색요원에게 선물(?)하고 나온 적이 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방학이면 한국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 일이다. 그 무렵 미국의 비건 시장은 유럽에 비하면 빈약한 편이었고, 한국보다는 조금 더 나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기농 마트인 Whole Food홀푸드에 가면 약간의 비건 제품들이 있었는데 '비건 냉동 피자'와 '비건 마요네즈'를 발견하고 꽤 기뻐했었다. 지금 같으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비건 마요네즈를, 그게 뭐라고 그걸 들고 오려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빼앗기고 말았다는 얘기다.


사실 '마요네즈'는 기름 덩어리 아니던가?  달걀노른자와 기름과 식초를 강한 원심력을 이용해 설탕과 소금으로 맛을 낸 달고 고소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 맛이다. 명절이면 빨간 껍질채 깍둑썰기 한 사과와 주황색 감, 오득 오득 씹히는 밤, 때에 따라 초록 오이까지 썰어 고소한 마요네즈로 버무리면 탄생하는 한국식 샐러드 아니 '사라다'의 그 맛을 대부분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비건이 된 후 먹을 수 없게 된 것 중 하나인 마요네즈. 그 마요네즈가 비건 제품으로 시중에 나와 판매되는 게 신기했다. 하여 그것을 한 병 사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맛 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동안 한국과 샌프란시스코를 비행기로 오고 간 경험만 해도 그렇고 기내에 액체가 반입금지라는 걸 잊은 것인가? 비건 마요네즈에 흥분해도 그렇지, 마요네즈가 고체라고 생각한 걸까? 손가방에 비건 마요네즈 한 병을 소중하게 담았던 것이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당연히 경보음이 울렸고 검색하는 여성이 웃으며 "잊었나 본데 이건 안 되겠는데요" 하는 거다.



더 웃기는 건 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사정을 했다는 거다. 


'내가 비건인데 이걸 너무 좋아해서 한국에 한 병만 가져가 소개하고 싶었다'라고.  잘 포장해서 화물에 실었으면 될 것 그 무렵 '비건 제품'이 귀하다 보니 비건 마요네즈에 눈이 멀어 일어난 해프닝이 아닐까 싶다. 안 되는 일에는 당연히 포기가 빠른 나는 재빨리 사과하고 직전에 산 것이니 '선물하겠다고 당신 가지라'라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여러모로 웃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10년이 넘어도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판매 방식과 종류는 물론이고 그간 원가가 올랐을 텐데도 가격도 올린 것 같지가 않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약 12년 전인가'시골생활건강식품' 이란 네이밍을 처음 들었을 때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이름이었다.




빵 좋아하는 나는 여기서 빵을 지속적으로 주문해서 먹었는데 한 번은 착오를 일으켜 주문만 하고 빵 값을 입금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주문하자마자 우리밀로 만든 식빵과 우리밀로 만든 건빵 한 박스가 도착했고 어느 때처럼 그 비건 빵으로 토스트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다 깜빡 잊고 있던 빵 값, 문득 생각이 난 건 여러 날이 지난 후였다.


연락조차 없는 '시골생활건강식품'인지라 혹시 내가 입금을 했는데도 착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전화를 했다. 날짜를 서로 확인을 해보니 내가 입금을 하지 않은 상태란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입금한 후 '사장님, 그 빵 값 제가 떼어먹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하며 즐거워했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참 이렇게 우직하고 일관성 있는 모양과 건강한 맛이라니. 새삼 이런 분들이야 말로 초창기 내 '비건 라이프'를 지켜준 분이었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제 아무리 다양한 맛과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는 비건 빵들이 쏟아져 나와도 '시골생활건강식품'의 일관성이 귀하게 다가온다.


곰살맞지 않은 오래 묵은 친구처럼 미덥고 든든한 마음도 든다. 그나저나 이 분들은 분명히 S.N.S 란 것과 담을 쌓고 살 게 분명하다. 얼마 전에 보니 홈페이지는 새로 업데이트가 되었다만 오랜만에 로그인하려니 에러가 나며 불친절한 것도 여전했다. 이상한 건 불편하단 생각보단 슬며시 웃음이 나더라는 것이다.



* 그때 공항 검색대에서 빼앗겼던(?) 그 마요네즈의 브랜드가 생각이 안 나서 구글링으로 찾아 비슷한 사진을 올립니다. 오랜 전인데도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유리병에 마요네즈를 담았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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