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까지도 나는 내가 매사에 쿨한 사람인 줄 알았었다. 여기서 '쿨하다'는 이미 일어나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이나 후회가 적다는 것' 정도의 의미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지만 그중에 '요가 선생' 이란 이름으로 꽤 오래 불렸고 여전히 그렇게 불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요가 선생'으로 지내며 스쳐간 수많은 '수련생들' 과의 소중한 인연들 중, 쉽게 되살려낼 만큼 특별한 인연들도 몇몇 있다. 그중에는 내심 친구처럼 여겨 오래오래 보고 지낼 거라 믿던 인연도 있었다. 내 첫 요가원의 수련생이었을 뿐 아니라 요가원을 옮겨 재 오픈했을 때도 나를 따라 찾아와 정규수련에도 참석했던 그였다. 요가선생과 수련 학생 사이였지만 종종 또래 친구로서 그를 대하곤 했다.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따스한 추억들이 많다.
하지만 그 또한 시절 인연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매일 보던 사이에서 가끔 통화하던 사이로, 그러다 내가 먼저 연락해야만 연락이 이어지는 사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코로나'라는 특별한 '경우의 수'가 있긴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닐 터였다. 도무지 생각을 해봐도 그가 나를 싫어하거나, 멀리하고 싶어 할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별 일 아닌 척 주기적으로 최대한 쿨함을 가장해서 연락하곤 했다.
"잘 지내요? "그는 즉각 친절하고도 다정하게 답장을 보내곤 했다.
" 어머 선생님, 잘 지내시죠?" 하는 일도 없이 뭐가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요"
" 조만간 같이 밥 먹어요 선생님 " 이렇게 연락이 되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곤 했다.
일일이 세어본진 않았지만 몇 달 만에 궁금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메시지를 보내면 여행 중일 때도 있었다.
" 어머 선생님 여기 제주도예요. 저 친구들과 일본 여행 와있어요"라는 답을 받으면
" 멋진 여행 잘하고 와요"
" 선생님 여행 마치고 올라가 연락드릴게요"
이 정도의 대화와, 연락하겠단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도 나는 우리 사이에 대해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도 나처럼 오랜 우정(?)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었다. 규칙적인 수업과 반려동물이 있는 나에 비해 자유로운 그는 계모임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는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계'와 '모임' 이 주는 '안정된 규칙과 질서'가 뭔가 '소모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한 제약'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간혹 '외로움'에 몸서리를 칠지라도 혼자 있을 자유가 더 소중했기에 기꺼이 왕따가 되기로 작정했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 퍼뜩 들어오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늘 비건 옵션이 있거나, 비건 식당을 찾아가곤 했다. 착각인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가 그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내 진심을, 좋아하는 마음을 다 보여줬기에 그 정도의 '남과 다름'이 불편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나 보다. 다정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다 소개하기엔 새삼스러워 그만하기로 한다.
오늘에야 비로소 문득 어쩜 그가 내색은 안 했지만 비건인인 나와의 관계에 '피로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손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약속에 비해 나와의 약속은 늘 신경이 쓰였을 거라는 것 같은 것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걸 다 감수하면서까지 만나는데 열성을 다하기가 전과 같지 않았다는 것. 그 생각이 들어오자 비교적 선명하게 우리의 관계가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이 영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나는 우선 오랫동안 그와 나누던 메시지 창에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이제 더 이상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사람 사이에도 '유통 기한'이 존재한다면 우리 사이에 '유통 기한'이 끝났다는 것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신선하고 달콤한 과일도 채소도 쿠키도 '유통 기한'이 지나면 먹을 수가 없다. 아까워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상한 부분을 도려내 봐도 결국엔 버려지고 만다.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처음의 신선함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먹을 수 없는 그것들을 흙속에 묻어버려 거름으로 퇴화된다면, 언젠가 비옥한 흙이 되는 데 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이로 인해 한층 더 단단하고 풍요로운 내면을 간직하게 된다면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너무 어려워하지 말기로 했다.
왼쪽 : 최근에 만난 친구와 해방촌에서
요즘 내 마음 한편에 새로운 등불이 환히 켜지고 있다. 멋진 친구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기 때문인데 서로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신념에 공감하며 저절로 친해지게 되었다.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일이 꽤나 소중해서 최근에서야 용기를 내서 오프에서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다. 여건상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도 그렇게 따뜻하고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건 참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멋진 비건 식당에서 종종 만남을 갖고 송년회도 했으면 좋겠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 하는 일도, 생김새도, 연령도, 성별도 다 다르지만 세상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데 온 마음이 기우는 이들을 보면 행복해진다.
눈만 뜨면 접하는 뉴스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 '참혹하게 죽어가는 동물들' , 마땅히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와 여성' 들. 이들의 소식을 보고 차마 눈을 감아버리곤 한다. 이토록 견디기 힘든 슬픔과 야만 속에서도 절망에서 희망 쪽으로 변화시키는 '힘'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규정하기 힘든 아이러니이다.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싶고, 나누고 합해진 에너지가 인류에 흘러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약속하지 않고 주고 받은 선물(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브랜드의 양말과 비누)과 그의 포스팅
'유통기한' 이 지난 관계를 벗어나니 비로소 새로운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쩜 예정되었던 인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한 만큼 '아름다운 거리'를 지키며, 아끼며 오래 가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