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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ug 22. 2022

팝송 좀 듣는 비건 패밀리

휘트니 휴스턴의 I'll always love you를 좋아하는 아기

젊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한 아기가 있다.



세 번째 생일이 지났거나 네 번째 생일이 다가올 수도 있으니, 아기 말고 '유아'라고 불러야 하려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조카의 딸아이는 생일 전. 후를 떠나 늘 '아기'라 느껴지곤 한다. 그런 아기가 신중한 표정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I'll always love you를 감상 중이라는 사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러고 보니 팝송에 심취한 아이의 아빠 또한 일찌감치 '팝송'을 좋아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우리 집안의 첫 번째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다 받고 자라난 아기였던 조카와 나는 1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난다.


서양 아이처럼 피부가 흰 데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는 '또록또록' 장난기가 가득했던 아이였다. 당시 나는 불안과 우울한 정서로 가득한 청년의 나날을 보내며 내 생각에 빠져 허둥대거나 골똘하곤 하는 시기였다. 그런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나의 첫 조카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신선하고도 천진난만한 존재였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인 나는 취학 전 유아에 불과했던 조카를  종종 음악 감상실에 데려가기도 했었다. 당시 세상이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아서인지 어린애를 데려간다고 누가 말리지도 않았고, 나 또한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두운 실내 가득히 큰 음악소리가 퍼져나갔을 그곳에 가는 걸 도리어 우리 둘 다 좋아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조카와 오랜만에 꽤 긴 통화를 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그 옛날의 내 이야기를 듣고 새삼스러워했던 적이 있다. 조카는 음악 감상실에서 내가 직접 신청했던 노래의 제목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상한 건 데려간 건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어떻게 했는지는 잊고 있었다는 거다.


조카의 기억을 복기해보면 '뮤직 박스'의 D.J에게 직접 신청곡과 사연을 적어 전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로서 마이크를 통해 신청곡이 소개될 때의 놀람과 경이로움이 컸던지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그런 경험들이 유년의 기억에 남아서인지 게 어디에선가 스피커를 통해 팝송이 흘러나오면 가수와 곡을 곧잘 알아맞히게 되었다고 한다.


 "어 저거 비지스다!" 오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절로 반가워 소리를 치는 꼬마라니

" 아니 시골서 온 초등학생이 비지스의 노래들을 다 알고 있었다니!"

모처럼 간 서울 친척집 형과 누나들은 감탄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큰 눈망울의 장난꾸러기 꼬맹이는 저도 모르게 어린 이모 손에 이끌려 듣던 음악을 즐기게 되었던 것이라는 얘기이다. 어디 비지스뿐이겠는가? 이글스, 스모키, E.L.O, 엘튼 존이며 음악을 참 많이 듣고 알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라디오만 틀면 'BEE GEES 비지스'의 'How deep is your love'가 나오곤 했는데 나는 'Tregedy'와  'Holidays'를 더 좋아했었다.


동요만 듣던 내가 팝송에 입문(?)하게 된 것은 중1 때 처음 듣게 된 돈오반의 'I like you'였다.


그 곡을 처음 들은 느낌은 정말이지 너무 황홀했다.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팝송의 세계에 눈을 떴던 것이다.

사춘기를 제대로 맞기 전까지 여중 1학년 시절 나는 꽤 명랑한 편이었다. 돈오반의 'I like You'를 아직 팝송을 모르는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며 우쭐했었나 보다. 그때까지 '팝송'을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우러러보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팝 음악의 세계를 알아차린 겁 없는 십 대 소녀는 꼬맹이 조카를 데리고 음악감상실엘 드나들었을 것이리라. 반전은 친구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팝송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알고 있던 나였지만 사실은 내 조카가 더 빨랐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의 딸은 더욱더 빨라서 만 세 살짜리가 '휘트니 휴스턴'에 감동을 한다는 거였다.


이제는 함께 늙어(?) 가는 조카와 나누는 대화가 친구 사이처럼 허물없다. 

간식 혹은 브런치 타임: 비건 아빠가 만들어준 망고와 키위 올린 비건 팬케이크

그의 딸아이는 남국의 과일을 좋아하는데 사실 나도 그렇다. 애플 망고며 키위를 얹은 홈 메이드 팬 케이크는 아빠가 직접 만들어 주곤 하는 아기의 조식 혹은 브런치 메뉴인가 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사랑하는 내 언니의 장남으로서 최선과 사랑을 담아 살아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감동을 주기도 한다. 물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눈을 반짝이며 넘어지지 않으려 내 손을 꼭 잡던 그 아이가 내 속에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뻔해도 뻔하지 않은 여운이 남는 것이리라.


휘트니 휴스턴의  'I'll always love you'에 심취해 있다는 세 돌 지난 아기, 아니 조카의 딸 사진을 보다가 잊고 있던 한 때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우리들 속에 각자의 분위기와 목소리로 존재해있던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떠올려봤다.


영화 보디가드에 출현했던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지스,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노래들
나의 첫 팝송 입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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