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주(?) 전의 일,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소풍을 다녀왔다. 아직도 여운이 남는 듯 하다. 사실 세 사람의 비건 소풍은 산에 다니기 3개월 차인 작년 겨울 무렵 기획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겨울숲에 들어서도 짜이티를 마셨기에 겨울이라도 못 갈 게 없는 소풍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겨울 날씨에는 아무래도 컨디션 조절이 필요한 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를 넘기게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 정해진 소풍날, 그날따라 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래서인지 물기 어린 숲은 초록의 요정들이 다 놀러 나온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숲의 나무들이 가진 초록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각자가 다른 빛을 품고 있다. 차를 타고 도시를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눈빛과 마음은 여유로워진다. 아무 작정이 없이도 저절로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된다.
내가 다니는 그 숲의 경로는 발길 닿는 대로 자연스레 난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 식이다. 꼭 정상을 찍고 오겠다는 성취와 정복의 개념이 아닌 오감으로 숲을 느끼는 식의 산행 스타일일 수도 있겠다. 이 좋은 숲을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는 바람은 숲도 아끼고, 내 무릎도 아껴야 한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떠올려보게 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우리는 이 소소한 산행에 합류하러 오신 손님을 잣나무 숲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1차로 각자의 배낭을 풀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을 맞이한데다, 짐을 좀 줄이고 걷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부지런하고도 솜씨가 섬세한 비건 손님은 머위잎 쌈밥, 쑥떡, 하루나 김치에 땅콩에 귤차를 가져왔고, 또 한 비건은 비건햄과 시금치와 두부를 구워 듬뿍 속을 넣은 김밥을 가져왔다. 그중에서 내가 가져간 게 제일 빈약한 편인데, 통밀빵에 잼을 바르고 사과와 바나나를 넣고 시나몬을 솔솔 뿌린 과일 샌드위치와 보이차를 가져갔다.
왼쪽 : 비건 소풍 만찬 오른쪽 : 손님이 직접 집에서 찌고 쳐서 만들어 온 쑥향기 듬뿍 떡
그렇게 1차로 소풍 만찬을 즐기고, 2차로 바윗길을 넘어 평소보다 다소 높은 쪽으로 올라갔다. 등받이 의자처럼 등을 받쳐주는 큰 바위 아래 우리 셋은 기대어 앉았다. 눈앞에는 금세라도 다가올 듯 펼쳐진 초록의 산등성이가 보였다.
살아온 이력과 취향과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 셋은 다 비건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아름답고도 고마운 자연과 마주한 순간 속에서 신과 자연을 향한 감사와 경외의 마음이 들어왔으리라. 그렇게 한 20여분을 침묵 속에서 함께인 듯 따로인듯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의 명상이었다.
일어나 천천히 다른 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아까 남겨둔 소풍 음식들을 싹 다 비우고 산을 내려왔다. 1만 5천에서 2만 보는 족히 걸었을 텐데 전혀 지치지가 않았다. 도리어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왼쪽 : 셋이 바위에 기대어 명상하던 곳, 오른 쪽 : 깊은 산 속 산 진달래
지금은 5월, 4월 소풍 때의 숲에 비해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하루 만에 수풀이 우거지고 초록잎의 생기가 달라져서 그런지 늘 오던 곳인데도 다른 곳처럼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아끼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 숲에서 만나요"라고 하고 싶을 만큼 5월의 숲은 축복이다. 이 아름다운 숲에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 생각만 하지 말고 다음부턴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