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카페, 모르는 사람들 속에 앉아 방금 나온 내 커피인 루미의 오트라테를 마주하고 있다. 판매율이 저조해져서일까? 경제성이 없어서일까? 작년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던 스타벅스의 비건 신 메뉴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아예 중단되었다고 보는 쪽이 맞지 않을까 싶다.
개중에는 커피 한 잔에 빵 조각 하나가 있고 없고 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건 가리지 않고 선택이 가능한 논 비건으로서는 선택적 빈곤에 처한 비건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 앞에 비건 크로와상이 있다. 오늘을 위해 어제 갔던 비건 베이커리에서 하나 사 왔기 때문이다. 창 밖에는 비,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비건 크로와상이 있으니 마음까지 풍요로워진다.
어제는 체감상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듯한 느낌인 오랜 지인과 만난 하루였다. 비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비건 카페에 가서 디저트와 차를 마시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드문드문 만나는 사이인데,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연락을 끊지는 않은 채 시나브로 30여 년을 이어져 온 관계이다.
어쩌다 보니 두 달 전에 약속을 잡아서 만나야 할 만큼 시간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갖는 시간이지만 한 순간도 대화가 끊어지지가 않은 채 이어져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아주 잠시 허탈감이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이해할 만큼 서로의 '아름다운 거리'를 지켜온 사이이니 모든 게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비건 카페, 비건 이즈 힙
그리고 오늘은 다시 노트북을 챙겨 낯선 사람들 속 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렇게 혼자 앉아서 쓸 궁리를 하고 있는 순간이 나는 참 좋다. 어느 사이 '시'로 등단한 지 16년 차, 두 번째 시집이 나온 지는 7년이 지났다.
아직도 내 책상 하나가 없는 집을 나와 카페를 전전하며 날마다 바뀌는 책상(?) 앞에서 쓰기 위한 숨을 고르지만 참 감사하다.
게다가 이럴 줄 알고 어제 데려온 비건 크로와상까지 하나 있으니 더 이상 뭘 바란단 말인가? 퇴고를 마쳐야 할 글쓰기 진도는 아직이지만, 오늘은 이 글을 쓰며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