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채식주의자' 인플루언서 '잔나 삼소노바'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 뜬다. '39세의 나이로 굶어 죽었다'라는 기사 제목이 꽤나 자극적이다. '비건' 또는 '비거니즘'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졌던 이들이 말거리로 삼기에 적당한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나치려다 말고 혹시나 '윤리적 비건'인 나에게 들어올지도 모를 질문 혹은 태클(?)을 유연하게 넘기기 위해 몇몇 기사들을 읽어보았다.
염려했던 대로 '답정너'를 추측케 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이 '극단의 식습관', 즉 육식이 포함되지 않는 비건 채식은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식의 결론이었다. 모름지기 인간은 소, 돼지, 닭, 생선, 달걀, 송아지가 먹는 우유와 채식을 포함 골고루 다 먹는 게 좋다는 '신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친김에 그의 S.N.S 계정까지 살펴보았다. 몰랐던 계정이었다
살펴본 바 '삼소노바'의 식습관은 일반적 비건은 아니었다. 모든 기사에서 그를 지칭할 때 '채식주의자' '비건'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해 그는 '프루테리언' 임이 분명한 듯했다. '프루테리언'이란 말 그대로 오직 과일만 먹는 식습관의 생활자를 말한다. 인간의 몸은 각자 다른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르다. 그의 죽음을 추측하는 수많은 가설들을 풀어줄 만큼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일식만 먹는 생활방식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그 자신이 알고 있었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가 된다. 즉 그 자신만의 의지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식의 본인 의지 말이다. 나는 그 또한 가능성을 열어 둘 수도 있다고 본다. 그의 죽음을 두고 부질없는 '말', '말', '말' 들이 너무 많이 오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으로 비건 14년째 비건 생활자인 나는 요즘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자연식물식'에 관심이 많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빵'과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과일 또한 너무너무 좋아하며 특히 열대 과일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사족을 못쓴다.
스스로 선택한 '비건'이라는 큰 영역은 지켜가지만 그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움을 유지하는 편이다. 그러다 간혹 요가 워크숍 강의 의뢰라도 오면 빵과 디저트를 멀리하며 조금 철저히 관리를 하곤 한다. 나름 유연함과 탄력을 유지하는 생활방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한 편으로 좋게 말해서 '몸'과 '마음'의 조화로움을 추구해 가는 비건 생활자이지만 사실 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유부단한 삶을 지향하는 내게 '극단'은 위험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윤리적 비건' 생활방식에 대한 신념만은 한결같이 후회가 없다. 글로벌 워밍, 즉 지구 표면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지구가 불타고 있다고 말들 한다. 이 현상이 불러오는 현상은 해마다 극지대 얼음이 녹아 생존을 위협받는 북극곰의 영상이 아니어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점 점 더 열대우림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여름의 날씨만 봐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농산물 값이 치솟는 것은 물론이고 당연한 듯 먹었던 우리 농산물들을 언제까지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극단적'이라는 표현은 흔히 '비건 생활자' 들을 지칭할 때 부정적 의미를 담아 쓰이곤 했다. 대신 '육식주의자'에겐 '극단적'이란 말 대신 '미트 러버'라는 표현을 붙이곤 하더라.
인간이 먹을 동물을 되도록 많이 경제 효율적으로 키우기 위한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파괴적이다. 소와 돼지에게 먹일 수많은 옥수수를 키우기 위해 푸르게 존재하는 삼림을 밀어버리는 파괴성 또한 극단적이다. 그뿐인가? 매일, 매 순간마다 은밀하게 운영되는 도살장으로 실려가는 수많은 동물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도축되고 있는 이 진실이야말로 극단적으로 참혹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 한 '프루테리언' '삼소노바'의 명복을 빈다. 존중받아 마땅한 그의 죽음이 너무 쉽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