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일찍 일어난 새가 먹으라고 아파트 화단 조경용 바위 위에 묵은쌀을 뿌려놓고, 낮이면 내가 먹을 국수를 삶는 나날이다. 무탈한 세상일 때도 약속이 드물었던 삶이니, 후덥지근해진 날씨에다 흉흉해진 세상인심을 핑계 삼아 주로 집안에서 머무는 나날들이다. 만남이 생겨야 비건 식당을 알아보고 약속을 잡곤 했으니 자주 가던 비건 카페도 전 같지가 않다.
이번 여름을 보내며 새삼 확인하게 된 건 내가 참 밀가루를 좋아하는 식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수를 삶고, 커피를 마실 때면 반드시 디저트 용도의 빵이 있어야만 하는 나. 마땅치 않으면 식사용 통밀빵으로도 커피와 어울리게끔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결국은 디저트를 좋아하다 보니 새로운 비건 카페 다니기가 일종의 취미로까지 발전했던 건가 싶다.
이번 여름의 국수는 우리밀과 우리 메밀이 6:3으로 섞인 메밀면이다. 나는 이 메밀면을 삶아 비빔국수, 물국수, 콩국수, 냉면국수로도 해 먹곤 한다. 기왕이면 수입 밀가루보다는 우리밀 제품이어야 했다. 수많은 '메밀국수'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들 중에서 신중하게 골라낸 면이다. 떨어지면 왠지 불안해질 것 같아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2~3개씩 사다 놓곤 한다.
그렇게 열심히 국수를 해 먹다 보면 마땅히 곁들일 야채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사러 나가기도 귀찮은데, 냉장고에 자두가 있을 때 '빙고' 나는 자두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냥도 맛있고 좋은 자두이지만 나의 사전에 자두를 국수 고명으로 올리지 못할 까닭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름없이 바짝 구운 통밀빵에 요거트 살짝 바르고 마스코바도 설탕을 뿌린 카페놀이용 디저트
아직도 질리지 않은 국물 있는 비빔 메밀국수에 오이대신 자두를 씨를 피해 오려내듯 잘라서 고명으로 얹어보았다. 모양도 예쁜 데다 비빔 양념 고추장과도 맛의 조화가 괜찮았다. 맛이 좋았다. 내가 탄수화물을 마음 놓고 먹는 시간은 대개 낮 12시부터 4시까지인데 원 없이 먹어도 좋을 맛이었다.
국수를 먹고 난 후 최소 30분에서 1시간 후쯤 디저트를 시작한다. 이수역 카페 거북이의 달달한 디저트 케이크 반 조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잘 안 먹던 초코맛 단백질 쿠키마저 떨어졌다. 오후 글쓰기를 시작하려 하면 떠오르는 달달한 디저트 생각. 뇌가 달콤한 물질에 세뇌된 게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그것만큼은 단념이 되질 않는다. 아니 그냥 단념하기 싫다.
두툼한 통밀 빵 한 조각으로 2~3조각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얇게 빵을 썰었다. 달군 팬에 기름 없이 노릇하게 빵을 구웠다. 타지 않도록 불 곁에 머물며 정성껏 구웠다. 쨈도 피넛버터도 떨어졌길래 마스코바도 흑설탕을 그냥 솔솔 뿌려봤다. 맛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