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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ug 11. 2023

두부와 가지가 있다면

한 접시로도 충분히 맛있는

여름에 두부를 냉동실에 보관하게 된 이후로 한 동안 내 집에 두부가 있다는 걸 잊어도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 두부는 은근히 상하기가 쉬운 식재료다. 그러고 보니 옛날 옛적 날마다 방울을 흔들며 동네를 돌아다니던 두부 장수의 출현도 신선한 두부의 공급망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 어머니야 집에서 콩을 삶고 맷돌로 삶은 콩을 갈아 두부를 직접 만드셨기에 내가 두부를 사러 다닌 기억은 별로 없다만. 입맛이 짧았던 나는 어렵게 만든 그 두부를 귀한 줄도 모른 채 깨작거리곤 했었다. 당신 보시기에도, 지금의 나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육류 및 해산물, 유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 에게 '두부'는 단백질의 중요한 급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온갖 비건 식품이 출현되기 전부터 비건으로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 말에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언두부를 녹이면 수분은 다 빠져나가고 고스란히 단백질만 남더라는 레시피가 꽤나 인상 깊었던 날이 있었다. 평소보다 두부를 많이 주문한 어떤 날, 즉시 요리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을 때 냉동실에 두부를 보관해 두곤 한다.


'어느 날 밥반찬을 좀 해야겠군' 싶을 때 냉동실에 쟁여놓은 두부를 일단 꺼내어 해동을 시키기 시작한다. 급하면 뜨거운 물을 틀어가며 물에 담가놔도 되지만 실온에 미리 꺼내놓는 것도 좋다. 두부 속 물이 빠져나간 후 두부를 깨끗한 면포나 핸드 타월로 꾹 눌러 완전히 수분을 빼는 과정을 거친다. 건축물의 골조처럼 앙상하고도 메마른 상태가 된 두부를 가지런히 잘라둔다.


최소한의 기름을 두른 채 달구어진 팬에 물기 뺀 두부들을 구워내기 시작한다. 나는 물기가 잘 빠지지 않은 상태의 두부들이 팬에 눌어붙으며 내는 수분의 파편들이 거슬리곤 했었다. 그에 비해 이 물기가 말끔히 빠진 상태에서 구워지는 두부의 폭신하고도 매트한 질감이 참 좋았다.


때마침 싱싱한 가지 사 온 게 생각이 났다. 좀 그럴듯하게 가지도 굽고 싶어졌다. 가지에 칼집을 냈는데 어디선가 본 가지 덮밥의 비주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지에 칼집을 냈다. 그대로 살짝 구워도 괜찮았다.


양념장만은 좀 맛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기에 있는 재료지만 심혈을 기울여 배합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맛인 양념장 만들기의 포인트는 단. 짠의 조화로운 조합에 있지 아닐까 싶다. 첨가물 범벅인 정크푸드로서의 단. 짠맛이 아닌 건강한 단. 짠 말이다. 특별한 날이거나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을 때라면 양념장의 배합물에 다시마나 파뿌리, 양파 같은 야채를 미리 끓여 식혀놓은 채소물을 섞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왼쪽 : 칼집 낸 가지에 양념장만 올려도 맛있다. 오른 쪽 : 기름없이 굽는 두부


언두부와 가지, 샐러리 그리고 완성된 요리(?) 한 접시


일반적인 양념장 만들기에서 1순위는 진간장의 선택이다. 수입콩간장이 싫을 땐 국산 콩 간장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럴 땐 특히 맛을 잘 내야 한다. 내 경우에는 간장과, 채소가루 양념과(채소가루 없을 때는 연두도 무방함) 물 조금, 유기농 설탕, 사과 식초, 마늘, 파,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조금이 기본이다. 이날은 특히 파 대신 냉장고에 남겨둔 셀러리 잎을 잔뜩 썰어서 넣었는데 너무 괜찮았다.


두부 얼리기를 몰랐을 땐, 더러 냉장실에서 신선도를 잃은 채 잊히던 두부와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물론 부지런한 주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날의 한 끼 반찬으로는 충분히 괜찮았다. 만드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도 않은 데다가, 남은 셀러리 잎을 활용한 것도 만족스러웠다.

맛? 두부는 바삭했고, 가지는 가지 맛인데 칼집을 넣어서 그런지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대개 이런 종류의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건 양념간장에 있다는 거! 요리 좀 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만 염두에 둔다면 지나친 기대나 그리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밥 반찬으로 충분히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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