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오늘은 무얼 먹어야 할지, 도무지 식욕은 생기질 않고 사놓은지 1주일에 접어든 '봄동'이 생각나는 거였다.
한**에서 주문한 이 봄동 두 다발이 처음 내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봄동'에 관해 대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봄동에는 그저 잘 자란 보통의 배추와는 다른 뭔가 야성적이고도 건강한 그 무엇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봄동은 일반적으로 생 겉절이를 해 먹을 수도 있고, 된장국을 끓일 수도 있고 부침개로 부쳐먹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해먹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겉절이는 하지 못했고, 된장국과 부침개까지 해 먹었으나 어쩐지 봄동에 대한 감흥이 전과 같지 않았다. 여전히 뜯지 않은 봄동 한 다발이 남아있었고, 때 마침 메밀국수도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봄동을 곁들인 메밀국수!
'메밀'을 떠올리니 집 나간 식욕이 돌아오려고 하는 것도 같다.
'메밀'에 '봄동' 이라니 너무 신선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국수 삶을 물부터 끓이기 시작했다. 소금물에 잠시 담가 둔 봄동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탈탈 털며 물기를 뺐다. 적당히 잘라 기름 없이 팬에 후다닥 볶아냈다. 돌김 2~3장을 굽고 지퍼락에 구겨 넣고 김가루를 만들어놨다. 통깨가 너무 적어 들깨 가루로 대체하기로 했다.
국수를 맛있게 삶으려면 찬물과 소금이 필요하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고, 이후로 늘 그렇게 국수를 삶는다. 흰 거품은 국수가 잘 끓고 있다는 신호, 이때 찬물을 조금 붓고 소금을 조금 뿌려 몇 초를 더 둔다. 이 모든 과정들이 다른 때에 비해 매우 빨리 진행되는 건 '메밀국수'에 반응하는 내 말초신경 때문이었으리라.
봄동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열이 가해지면 빛깔이 더 고와진다. 기름 없이 팬에서 볶아낸 연두색 봄동의 빛은 '봄' 바로 그 자체였다.
이제 삶은 메밀국수를 찬 물에 헹궈 물기를 빼 그릇에 담는다. 볶아낸 봄동을 넉넉히 국수 위에 깔고, 김과 들깨가루를 얹고 간장과 들기름을 입맛대로 두른다. 이제 양념이 서로 잘 스며들도록 슥슥 비빈다. 때마침 해 놓은 동치미가 있어 국대신 동치미국물을 김치대신 동치미 무를 조금씩 깨물며 함께 먹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꽤 맛있는 저녁 한 끼였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국수 양을 조절 못해 남은 국수를 이미 배가 다 찼는데도 더 먹을 뻔한 것. 그건 좀 위험한 순간이었는데 위에 부담되지 않게 먹으려던 가벼운 저녁 한 끼의 의도와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시집 속에 수록된 봄동을 주제로 쓴 시 한 편이 있다. 기왕에 시작된 봄동예찬(?)이니 여기 소개해보고자 한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