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또 '남미 플랜트 랩'에 다녀왔다. 여기서 굳이 '또' 라고 쓴 이유는 비교적 매우, 자주 간 곳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약속을 잡을 때 먼저 떠오르는 곳이 '남미 플랜트 랩'이었고, 주로 '비건 식당'이 첫 방문인 지인과 방문하곤 했다. 세상에는 나와 남미플랜트랩에 다녀온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할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 좁은 인간관계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사실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을 자주 생각할 뿐 아니라 비교적 오래오래 보려고 하는 편이다. 마음과 달리 늘 표현이 소극적이지만 사실 동물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남미 플랜트랩을 비롯한 비건 식당에 함께 갔던 사람들은 내 삶에 꽤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이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록 자발적으로 선택한 비건 식당에서의 한 끼가 아니라 해도 기껍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한 그 순간들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 소개로 한 번 '남미 플랜트랩'에 다녀간 사람들 중 이곳이 좋아 다시 찾아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이 식당의 음식 맛은 논 비건들의 입맛도 사로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어디에서 출발해 오더라도 접근이 편한 사당역 근처에 위치했다는 장점과 음식 맛이 좋기로도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검증된 '남미 플랜트 랩'이란 점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다녀와서 알게 된 특이 점 하나는 여기서의 밥값을 거의 항상 내가 계산했다는 사실이다. 떠밀려서가 아닌 자발적인 계산일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의 밥값은 그 지인들이 계산했었는데 나름 재미있는 일일수도 있었다. 작정하고 누구누구와 갔었나 떠올리다 보니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왼쪽 : 남미 플랜트 랩의 시그니쳐 피자, 오른 쪽 : 내가 시켜먹은 후무스 플래이트
하지만 사실 나는 이곳이 슬슬 지겨워(?) 지고 있었다. 논 비건 시절에도 나는 당연히 야채 호빵 말고 팥 호빵 쪽이 좋은 할매 입맛의 소유자다. 어쩌다 먹는 피자나 파스타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하지만 손님들은 야채 피자와 토마토 파스타 앞에서 너무나 행복해했다. 싱싱하고도 예쁜 야채의 빛깔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비주얼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 손님들의 음식은 피자와 파스타였다. 그들과 달리 나는 언젠가 혼자 와서 찾아내 먹었던 후무스 플래이트였다. 그 맛있는 피자와 파스타에 물린 내가 남미 플랜트랩에서 발견한 내게 딱 맞는 음식이다. 일종의 애피타이저쯤의 메뉴였나 본데 맛도 양도 딱 좋았다. 병아리콩 후무스와 바질 페스토를 를 담백하고 얇은 피타브레드에 발라서 야채(아보카도, 토마토, 등등)를 얹어 먹는 거였다.
지난 계절에 안 하던 주식투자로 돈을 잃었을 뿐 아니라, 수익을 낼 만큼의 인세가 들어오는 작가는 더더욱 아니다. 짧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요가수련 또한 돈과는 무관한 삶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머니 사정은 그렇지만 논 비건 사람들과 비건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 먹으며 펑 펑(?)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일이 생명을 살리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고깃집' 또는 '횟집'의 실체 속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자리 잡고 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이 없을 사회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혓바닥의 욕망을 탐닉한다. 어떤 개인도 타인의 욕망에 대해 쉽게 단정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비 윤리적인 방법으로 도살되거나 착취된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걸 선택해 목구멍에 넘길 자유가 그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구의 삶에도, 그가 사는 방식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선택에 대해서 내가 살며 깨닫게 된 평화로운 공존의 방식에 대해서 내 식으로 쓰고 나눌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9월부터는 안 다녀본 비건 식당에도 더 열심히 다녀볼 생각이다.